대북 ‘삐라’ 살포 계속 내버려두어야 하나?
지난 2014년 10월 10일 남북관계사에서 하나의 획을 그을 만한 사건이 경기도 연천지역에서 발생하였다. 이날 오전 11시께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이민복)’은 경기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대북 ‘삐라’ 20만장을 북쪽으로 날려 보냈다. 이 삐라 중 일부가 경기도 연천 지역 상공에서 낮게 날아갔고, 이것을 북한군이 14.5mm 고사총을 사용하여 떨어뜨렸다. 북한의 고사총탄 가운데 일부가 연천군 중면 면사무소 인근 민간지역에 떨어졌다. 이에 대해 우리 군 28사단은 낙탄 현장을 확인한 후 북한 GP 일대에 K-6기관총으로 40여발을 쏘며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연천군 지역 주민들이 전쟁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이런 가운데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대표 최우원 부산대 철학과 교수)’ 등 보수단체들은 10월 25일 대북 삐라 살포를 예고했다. 이 문제를 두고 남한내에는 극심한 ‘남남 갈등’이 벌어졌다. 일부 탈북자 및 보수단체들은 삐라 살포를 적극 지지한 반면, 파주·연천 등 접경 지역 주민들과 진보단체는 삐라 살포를 적극 반대 하였다. 접경 지역 농민들은 삐라 살포 저지를 위해 농기계까지 동원하였다. 사실 접경 지역 주민들은 ‘종북’이 아니라 매우 보수적인데도 삐라 살포를 적극 저지하고 나섰다. 파주 지역 상인들은 안전위협과 더불어 관광객 감소에 따른 매출 감소의 이중고에 시달렸다.
남남 갈등 가능성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부는 삐라를 저지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었고 경찰은 구체적인 대응계획은 밝힐 수 없다면서도 보수단체와 주민들의 충돌이 있거나 주민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경우 삐라 살포 제지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정부의 입장이 부처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보수정권으로서 보수의 입장을 지지해야 하는 점과 남북대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는 점 사이에서 정부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정부가 삐라 살포를 원천봉쇄할 의도가 없는 가운데 보수단체는 10월 25일 삐라 살포를 강행하였다. 예상대로 파주군 주민과 보수단체들은 삐라 살포를 강제로 저지하였다. 임진각에서의 삐라 살포는 무산되었고 보수단체는 통일전망대로 옮겨 삐라 살포를 시도하였다. 이것마저 저지되자 보수단체는 오후 7시 30분께 김포시 월곶면에서 대북전단 2만장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야간이어서 전단이 북한 방향으로 날아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박상학 대표는 “낼모레 또 250만장을 왕창 보낼 예정이다. 내년 봄이 오면 또 시작할 거다”라고 밝혔다. 박상학 대표의 태도로 보아 대북 삐라 살포는 지속될 것이고 남북간 군사적 충돌은 물론 남남갈등도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 방안은 정말 없는 것인가? 방안은 있다. 보수 정부인 이명박 정부는 2012년 10월에 보수단체의 임진각 전단 살포를 완전 봉쇄하였고,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4월13일 경찰은 김포에서 전단 차량을 사전 차단한 바 있다. 현재와는 전혀 다른 입장이었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막을 수 있다는 증거이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해서 누구나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국민은 헌법 제21조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헌법은 37조 2항에서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 안전 보장, 질서 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라고 규정하고 있다. 내가 갖는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해 다른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면 그것은 ‘나쁜 자유’이다. 정부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민원을 엄중하게 받아들여 헌법과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을 적용해 추가 삐라 살포를 막아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안전불감증’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군사적 대응 가능성이 높은 대북 삐라 살포를 막지 않고 지켜보는 것은 “사고가 불보듯 뻔한데 공연 자체를 중지시키지 않고 공연장 주변만 지키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우리는 국가이익 때문에 제정된 국가보안법에 대해 반드시 찬성하지는 않지만 지키며 살아간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매우 강력한 조사를 시행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2014년 2월 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발표한 보고서는 북한에서 인도에 반하는 범죄가 자행되고 있으며,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유엔 조사위’는 남북한 간 화해로 이어지는 단계적인 대화, 문화·과학·스포츠·경제개발 등의 영역에서 국가와 시민단체들의 인적 교류 기회 증가, 인도적 지원 등을 권고하고 있다. ‘조사위’는 또 “북한과 다른 나라들은 여행과 접촉을 범죄화하는 조치들을 포함해 인적 접촉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여기에서 ‘접촉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란 우리의 국가보안법도 포함된다. 북한 인권에 대해 가장 보수적인 기관조차도 문제점을 지적하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우리는 국가안보를 위한다는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여 ‘접촉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 법을 지키고 있다.
‘표현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이익을 헤치는 표현은 자제되어야 한다. 정부는 공익보호라는 명분으로 ‘카카오 톡’까지 검열하려 하고 있다. 대북 삐라 살포는 북한 주민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삐라로 인해 북한 주민들의 마음이 공고화된다면 그 살포는 하루빨리 중지되어야 한다. “북한에서는 삐라를 볼 자유도 없고 삐라를 주울 자유조차도 없다”는 것이 어느 탈북자의 증언이다. 삐라만 보아도 북한 주민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죄지은 사람모양 가슴이 두근거린다. 삐라는 그것을 접하는 북한 주민을 고통으로 빠트리고 오히려 원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북한 하층민은 삐라 처리 문제로 처벌을 받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 속에서, 상층민은 삐라로 인해 주민 사상이 동요하지 않을까하는 공포심 속에서 살아간다. 북한 상층부가 삐라를 ‘북한 붕괴전략’으로 인식하고 강력히 대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한 접경지역 주민들은 삐라로 인해 전쟁이 나지 않을까, 생존권이 위협받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의 약60%가 삐라 살포를 반대하고 있다.
비록 삐라를 통해 북한 주민의 변화를 도출할 수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다 알 수 있도록 요란하게 하는 방법은 하수이다. 상대방이 충분히 알고 대비할 것이기 때문에 그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다. “조용히 냄새도 나지 않게” 사상을 전파하는 것은 전력전술의 상식이다. 이제 진정으로 북한 인권을 개선하고 북한주민의 변화를 원한다면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권고한 대로 남북간 대화와 협력, 대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 마음을 사는 데 있어서 대북 직접 접촉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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