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진흥계획 10년 시리즈 5회-러시아 몽골과의 경쟁적 다자 협력

201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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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동북진흥계획 10년...질적 변화 접어든 북중경협 3회

차례 

1회. 공동관리 공동운영의 새로운 협력모델

2회. 국경의 빗장을 열어제끼다

3회. 기업 중심의 협력 확대 및 심화

4회. 전력망 연계와 인민폐 결제통화 도입

5회. 러시아 몽골과의 경쟁적 다자 협력

6회. 훈춘 북방의 선전(심천)이 될 것인가

 
 북중러의 이른바 북방 3각의 관계는 사회주의체제라는 이념적 대의 속에 묶여 있었지만 경쟁과 견제 때로는 심각한 갈등 관계에 있었다. 특히 북한은 중러가 이념분쟁을 겪을 때부터 이런 대립과 갈등을 적절히 활용해왔다. 외교의 영역에서 보면 예컨데 독립적 자주외교를 내세워 어느 한쪽에 서지 않은 채 중러의 틈바구니에서 양쪽으로 부터 경쟁적으로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90년대 초반 중국 러시아가 모두 한국과 수교를 하는 과정에서는 북중, 북러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북은 고립 속에서 홀로서기를 모색해야 했다. 중러의 갈등이 크지 않은데다 러시아는 공산당의 몰락을, 중국은 천안문 사태로 모두 내부 문제가 시급했다. 북한은 러시아의 배신에 크게 반감을 표출하긴 했으나, 중국과는 협력을 유지하면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변화를 수용했다.  이 시기 북한이 취한  미국, 일본과의 과감한 관계정상화, 나진 선봉자유무역지대 선포와 같은 부분적인 개혁 개방조처는 이를 뒷받침한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78년 홍콩에 인접한 선전을 비롯해, 주하이, 산터우, 샤먼 등 4대 경제특구로 시작됐다. 그러나 본격적인 중국의 변화는 92년 1월 당시 최고 실권자 덩샤오핑의 남순강화로부터다. 개혁개방의 확대심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중국이 92년 한중 수교라든가, 1국 2체제론 등으로 대만과의 적극적 협력을 추진한 것은  이런 개혁 개방을 위한 동력과 그에 필요한 외적환경을 확보하기 위한 조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 가운데 특히 국가주도의 경제정책을 바탕으로 빠른 성장을 보이던 이른바 신흥공업국가들(한국 대만 등)의 전략을 성장모델로 삼았다. 
 
20년을 사이에 둔 김일성과 김정일의 마지막 중국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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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10월 김일성의 마지막 중국 방문에서 만난 덩샤오핑과 김일성. 아래는  선전의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기념물의 모습
 
바로 이즈음 김일성 주석은 1991년 10월 그의 생애 마지막 방문이 된 중국 방문에서 덩샤오핑을 만났다. 당시 덩샤오핑은 천안문 사태를 수습하고 당지도부를 재편해 후계자로 장쩌민을 지명해 둔 상태에서 남순 강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그해 초 공식석상에 나오지 않겠다며 은둔을 선언한 덩샤오핑은 김일성의 만나자는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김일성에게 개혁 개방을 권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두 사람이 나눈 대화 가운데 김 주석이  ‘광장의 붉은기는 언제까지 나부낄 것인가’ 라는 말은 그 뒤로도 회자됐다. 여기서 광장은 모스크바를, 붉은기는 공산당을 상징한다. 91년 8월 모스크바의 보수파 쿠데타가 실패하자 두 지도자는 소련의 몰락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산주의 건설에 일생을 투신한 두 지도자는 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를 지낸 한반도전문가 돈 오버도퍼가 쓴 <두 개의 한국>에 따르면 두 사람은 김일성의 중국 방문전인 9월27일 조지 부시(아버지) 미 대통령이 발표한 전술핵무기 철수에 호응해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 만남은 그해 여름 보수파의 불발 쿠데타를 기점으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권력을 상실해가는 새로운 정세 속에서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대미 대남 관계에서 전략적 결단을 내리는 하나의 분수령이었다. 

덩샤오핑이 남순강화로 나아갔다면, 김일성도 방향은 같았다. 김일성은 방문 직후인 10월16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중국적 특성에 맞는 사회주의의 변형•발전을 높이 평가’하는 성명을 내놨다. 그리고 12월  나진-선봉을 자유무역지대로 선포했다. 이 당 정치국 회의를 시작으로 북한은 11월25일 외교부 성명을 통해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겠다”고 밝혔다. 12월24일엔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열어 핵시설 사찰을 허용하고 남한과 쌍무 핵협정을 체결하도록 결정했다. 남북은 12월31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김정일 비서를 군 최고사령관에 추대하는 결정도 이 중앙위 전원회의에서였다. 

또한 핵문제의 진전과 병행해 남북관계에서는 방중 직후인 10월과 12월 잇따라 남북고위급 회담을 재개해 이른바 남북기본합의서를 타결지었다. 미국의 한반도전문가인 셀리그 해리슨은 이 당 중앙위 전원회의가 핵, 후계문제,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대미관계에서도 한국전쟁 이래 견지해온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유보하기로 하는 등 중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덩이  92년 1월 개혁개방을 확대 심화하는 ‘남순강화’를 발표한 시점에, 김일성은 김용순 당비서를 뉴욕에 보내 아널드 캔터 미 국무차관과 한국전 이후 최초의 북-미 최고위급 회담을 열었다. 그러나 93년 1차 핵위기 등 중국과 북한은 다른 길을 걸었다. 

90년대 초반 유엔개발계획(UNDP)이 추진했던 두만강개발계획은 북한의 이런 나진선봉 특구 설치라는 조처와 중국이 1992년 훈춘에 국제합작시범구를 설치한 것을 배경으로 진행된 것이다. 당시  북일 수교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이었기에 북한은 중국과의 협력과 북일수교를 통한 일본으로부터의 보상금과 투자 등을 기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보기에 이 지역은 대륙 만주로 가는 관문이자, 투자거점으로서의 잇점이 있었다. 중국 역시 개혁개방의 심화라는 큰방향에서 북중러 국경협력을 통해 이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런 점에서 90년대 초반 두만강지역 개발과 관련한 북중러 세나라의 관계는 큰 틀에서 변방의 낙후된 이 지역의 개발이라는 공통의 목표와 그를 위한 협력이라는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서구자본의 유치를 위해서는 경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의 나진항과 러시아의 포시에트항 간에 중국 동북3성으로 가는 수출입화물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격화됐고, 중국은 중국대로 나진 또는 포시에트, 자루비노항을 저울질 하며  훈춘에서 동해로 나가는 팡촨(방천)에 독자 항구를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보였다. 두만강을 축으로 북한, 중국, 러시아 3국간에 물류기지 선점을 위한 경쟁만 부각됐을 뿐 어느 누구도 서구자본의 유치에 성공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곳은 중국, 북한, 러시아의 변방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에게도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었다. 강원도가 그랬고,  동해에 면한 일본의 서부지역도 태평양연안 쪽에 비해 크게 뒤쳐졌다.  이들 5개국이 만나는 바다 동해는 한마디로 ‘변방의 바다’였다. 
 
003.jpg » 김정일의 2011년 5월 중국 장쑤성의 양저우를 방문해 장쩌민을 만난 모습.
 
김일성의 마지막 중국 방문 20년 뒤인 2011년 5월 이번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이 방문에서 그는 20년전 아버지의 중국 방문을 기억했음에 틀림없다. 이틀 밤을 특별열차에서 보내며 2000여㎞를 달려 장쑤성 양저우를 찾아감으로써 아버지가 갔던 여정을 그대로 밟았기 때문이다. 1991년 79살의 고령으로 김정일 후계체제로의 수순을 밟고 있던 김일성과  장쩌민 총서기를 후계자로 내세운 덩샤오핑은  ‘대를 잇는 친선’을 다짐하려 했다. 

김일성은 장 총서기와 함께 양저우를 찾았다. 양저우는 장쩌민의 고향이었다. 덩샤오핑의 권고를 따른 것이다. 2011년 5월 김정일 위원장이 양저우를 간 것은 1991년 10월 김일성의 마지막 발자취를 밟아가려는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가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 방문 뒤인 6월6일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방중 결과를 평가하면서 황금평 위화도를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그리고 6월 9일 북한과 중국은 나진선봉 특구 공동개발 착공식을 열었다.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아버지처럼 2011년 5월 방문은 생애 마지막 중국방문이 됐다.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아들은 북-중 협력을 한 단계 발전시킴과 동시에 개혁개방으로서 특구설치를 결정함으로써 나이 어린 아들 김정은으로의 후계체제에 대한 협력을 재확인한 셈이다. 이로써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는 20년 만에 잠에서 깨어났다. 
 
   
동북진흥계획 10년 새로운 단계-동북 지역 4갈래 대외개방 대통로 구축
 
올해는 지난 2003년 후진타오 4세대 지도부가 공식 입안한 지역균형발전 정책인 동북노후 공업기지 진흥계획이 1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동북진흥계획이 북중 경제협력으로 본격화된 것은 중국 중앙정부가 2009년 11월 발표한 중국 두만강지역 합작개발  계획 요강(공식 명칭은 창지투를 개발개방 선도구를 하는 중국 두만강지역 협력개발 계획 요강)에 의해서다.  중앙 정부는 지린성정부가 몇년전부터 지역 경제활성화를 위해 검토해 온 창지투 개발개방 계획을 수용했다. 이때부터 창지투 개발개방 선도구는 국가 차원에서 실행단계에 들어섰다. 아울러 동북진흥 계획 초반부터 연해지역 경제벨트구축을 실시해 온 랴오닝성은 2010년부터 지린성과 협력해 압록강 경제벨트 전략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역 경제협력은 창지투 개발 계획과 랴오닝성의 연해지역 및 압록강 경제벨트 구상과 결합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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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10년 5월, 2010년 8월 그리고 마지막 방문이 됐던 2011년 5월까지 1년여 사이에 3번에 걸친 중국방문은 이런 동북진흥 계획의 구체화를 북중 협력과 결합시키는 과정이었다. 그 합의의 결실이 2011년에 6월에 정식으로 가동된 북한의 황금평,위화도 특구 설치와 나선경제특구의 공동개발, 공동관리인 것이다.

20여년전 설치된 북중 접경지대의 경제특구는 이제 극적인 변화에 들어섰다.  연변대의 김성남 경제관리학원 교수는 북중양국의 ‘2개 경제지구’의 개발협력은 이제 랴오닝성과 북한의 평안북도, 지린성과 북한의 라선시가 각각 지방간 경제무역협력 체제를 설립하는 형태로 구체화하고 있으며, 지린, 랴오닝성에 대한 북한의 개방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중러의 경쟁적 투자 확대와 북중러 3각 연계+ 몽골

20년전과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중국이다. 창지투 선도구를 내세워 자본투자 등 주도적 역할을 한 중국은 변화의 추동력이 됐다. 또 다른 놀라운 변화는 두만강지역에서의 북중러의 관계다. 이 지역에서 북중과 북러, 중러의 경쟁과 견제의 상호작용은 오히려 협력을 확대시키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몽골까지도 가세하면서 이 지역을 대륙의 해양으로의 출구이자 동북아 내 협력거점으로 변모시켜 가고 있다. 
 
005.jpg » 두만강 하구 팡춴의 전망대 용호각에서 내려다 본 하산역의 기차와 육교
 
지난 9월22일 러시아 극동 하산과 북한 나진항을 잇는 철도 개통기념식이 있었다. 그동안 북한•러시아 간에는 하산을 통과하는 러시아 철도가 두만강역 다음의 홍의리역에서 중단되어, 여기서 나진항까지  50여㎞ 구간을 잇는 게 숙제였다. 러시아 철도는 광궤이고 북한은 협궤로 되어 있어 나머지 50여㎞에 광궤 철로를 깔아야 한다. 2008년 북•러 간에 하산-나진 간 철로 연결 합의가 이뤄진 것은 2008년이었으니 5년만의 개통이다. 

그동안 러시아 철도공사와 북한이 지난 2008년 7월 설립한 합작회사 ’라손콘트란스‘가  철로 개보수 및 나진항 현대화 공사를 동시에 벌여왔다. 합작 형태의 사업이었지만 약 4억 달러(약 4천300억원)에 달하는 공사비는 러시아가 모두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양쪽은 그동안 하산-나진(52km) 본선과 나진-나진항(2km) 지선 등 전체 54km 구간에 러시아식 광궤(1520mm)와 한반도식 표준궤(1435 mm) 방식 선로가 나란히 놓인 복합궤를 새로 깔았다.  선로 방식이 달라도 차량 바퀴를 바꿔 달 필요없이 열차가 신속하게 운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또 같은 구간에 있는 18개의 교량과 3개의 터널 등도 개보수했으며 현대식 신호 및 통신 장치도 새로 설치했다.
 
006.jpg » 훈춘과 인근 러시아 마하린노로 이어지는 러시아 철도
 
중국은 이에 앞서 훈춘과 러시아 연해주 하산을 잇는 중러 국경철도를 재개통했다. 지린성은  중국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훈춘~하산 국경철도가 8월 2일 본격 운행에 들어가 오전 10시께 러시아산 석탄을 가득 실은 국제복합운송 열차가 하산의 마한리노를 출발해 오전 11시15분께 훈춘 국제환적역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북한 나진항에 이어 러시아 자루비노항도 본격 이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북한의 나진, 중국 훈춘, 러시아 하산이 서로 철도로 서로 연결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린성은 이 철도 재개통으로  하산의 자루비노항을 이용한 국내화물 운송은 물론 한국, 일본, 미국 등과 국제화물 운송도 확대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중국의 훈춘 해관(옛 창링즈 해관)과 인접한 크라스키노 세관의 신축 공사에 들어가 대형 차량 검사 및 통관설비를 크게 확충했다.  또 블라디보스톡에서 크라스키노 세관까지 일부 2차로를 확장해 4차선 고속도로로 개보수하는 공사에 착수했다. 기존 5시간 걸리는 거리를 크게 단축할 것이다. 이 고속도로는 북한 나선으로 가는 노선과 상당 구간이 겹친다. 러시아는  중국 훈춘과의 연계 수송망을 확충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한국을 참여시켜 일본을 포함해 동북아 지역 국가들의 유럽행 수출 화물을 나진항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이를 개보수된 하산-나진 구간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을 통해 유럽까지 운송하는 물류 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지린성이 훈춘에 거는 기대는 더 원대하다.  중국 전역의 물류가 두만강지역을 통해 배송되는 종합화물운송 기지 구축이다.  훈춘시를  동북아시아지역에서 가장 국제화, 현대화한 물류 중추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훈춘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최근 국제화물운송 중추역 공사에 착수했다. <연변일보>(2013년 11월 5일)는 훈춘시 국제물류단지 안에 63만1200 ㎡ 부지규모에 총 투자비 5억2천만 위안(8천500만 달러)이 들어갈 훈춘국제화물운송 중추역이 들어선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린성은 훈춘에서 중국 내륙 중심지인 내몽고 지치주 우란하오터(烏蘭浩特)시에 이르는 훈춘-우란하오터 고속도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서남쪽 훈춘-둥닝(동녕)을 잇는 동변 철도ㆍ고속도로 연장선에서 훈춘세관과 취안허(권하)항구에 이르는 프로젝트도 세워놓았다. 중국은 이미 2011년부터 동북3성이 아닌 내몽고자치주를 포함한 동북4성의 협력을 논의하는 행정장관 연석회의를 열어오고 있다.

007.jpg » 지난달 28일 몽골대통령으로는 9년만에 북한을 방문한 차히야 엘벡도르지 몽골 대통령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몽골이 북한에 눈을 돌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 동북지역에서의 동해를 출구로 하는 대통로가 구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석탄 철광석 등을 텐진으로 싣고 갈 필요가 없다. 내륙국가 몽골 또한 북한과의 협력을 본격화함으로써 역시 바다로의 출구를 확보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자원 개발 협력을 적극 추진해 온 몽골은 지린성과 마찬가지로 이를 바탕으로 한 자원수출 등 동북아 국가들과의 통상 무역을 확대하려 했으나 해양 통로가 없었다. 중국-러시아 틈새에서 북한과 몽골은 나선특구를 매개로 새로운 협력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10월28일~31일 차히야 엘벡도르지 몽골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그 속도를 빠르게 할 것이다.  그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회담을 하고 공업•농업, 문화•체육•관광 분야 협조에 관한 협정과 2013-2015년 정보기술 분야 교류 계획서에 서명했다. 몽골 대통령의 방북은 2004년 나차긴 바가반디 대통령의 방북이래 9년만이다. 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광범위한 협력이 추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엘벡도르지 대통령은 지난해 북한의 항구를 빌려 사용하고 싶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번 회담에 앞서 7월달에만 네차례의 몽골 정부 대표사절단이 북한을 방문했으며, 9월엔 몽골 정부의 경제•무역대표단이 방북해 의정서를 체결했다. 그 가운데는  “나선경제특구 개발에 몽골쪽이 참여하는 문제와 몽골에 파견된 북한 인력(현재 1700여 명 규모)의 확대, 정보기술(IT) 및 농축산 분야의 경협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몽골의 에너지기업인 HB오일은 지난 6월 선봉에 있는 승리정유회사 지분 20%를 1천만 달러에 인수했다. 또 북한의 농지개간 사업에 몽골 기술자가 참여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농축산 분야 내지 농지개간 사업의 협력은 북한이 강원도 일원에 조성중인 대규모 축산단지인 ‘세포등판’ 개간사업에 몽골 중국 등이 참여하기로 한 것을 말한다. 강원도 ‘세포등판’ 축산단지 조성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중요한 경제적 업적이자 북한이 ‘경제강국 건설’의 주요 상징물로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사업이다. 북한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 해 9월 개간을 시작해 1년 만에 5만여 정보에 이르는 인공 목초지 조성이 이미 끝났으며, 이제 남은 건 축산기지와 축산물가공기지 건설이며, 2015년을 완공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10월22일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공식 인터넷 홈페이지)에 따르면 리홍차이 북한 주재대사 등 대사관 고위 관계자들이 10월 17일 ‘세포등판’ 축산단지 조성 현장을 견학했으며, 리 대사는 북중 양국 간 목축업 분야 교류합작 촉진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의향을 밝혔다. 북은 중국과 몽골을 경쟁적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훈춘 나진을 중심으로 한 두만강 삼각지역이 동북아 대륙과 해양을 잇는 거대한 물류 생산거점이자 관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북중러 3국에 몽골이 가세한 다자협력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초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 제3차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대회는 동북아와 극동지역간 무역량이 조만간 급속도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를 위해서는 한 항만에서 다른 지역의 항만까지 어떠한 검사없이 멈추지 않게 바로 운수할 수 있는 도로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권철남 연변대 경제관리학원 교수는 “중국의 동북 진흥전략은 북한 러시아 등과의 큰 지역협력의 방향을 갖고 있다”면서  “러시아의 항구개발, 몽골과의 협력등 광영두만강개발계획(GTI)의 틀 안에서 다자적 접근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변대 동북아연구원의 윤승현 교수는 지난 3월 중국의 시진핑 지도부는 동북진흥계획 10년을 맞아 “그동안 성과와 경험 문제점 등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다음 10년을 내다본 계획을 내놓았다”고 밝혔다.  이른바 전국노공업기지 조정개조 규획(2013~2022)이다. 동북진흥계획의 성과와 경험에 기초한 모델을 동북지역에서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중국이 이를 통해  과거에 비해 더 효율적인 산업배치와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동북지역 발전 전략을 추진할 것이며, 북-중 접경지역 개발도 한 단계 진전될 것으로 예상했다.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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