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MS-국방부 저작권 분쟁’ 투자자국가소송 나서나
주한미대사관 MS 불러 “원칙대로 처리하라”
주한미군 전력증강 ‘당근’ 뒤 통상현안 ‘채찍’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저작권 분쟁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오던 국방부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국방부의 저작권 분쟁에 미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한미FTA에 규정되어 있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동원하는 등 초강경 조치를 행사할 조짐이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마이크로소프사는 국방부를 상대로 불법 소프트웨어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군 지휘통제(C4I) 사용을 금지하는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이번 분쟁을 조사하고 있는 한 소식통은 “국방부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저작권 분쟁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미 국제무역위원회가 직접 나서 이번 일에 개입하려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미 이들이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접촉에서 미 국제무역위원회쪽은 마이크로소프트에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미 국제무역위원회는 불공정 무역행위를 감시하는 준사법기관으로, 특허 침해와 관련해 금전적 배상을 묻지는 않지만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제품에 대해 수입 금지 조처를 내릴 수 있는 중요한 기관이다. 양쪽의 접촉 여부에 대해 주한미대사관 공보실에 사실 여부 확인을 요청했지만 “미국 정부가 어떤 공식적인 입장을 낸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확인해줄 수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마찬가지로 “확인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답변을 피했다.
한미FTA와는 관련이 없다지만…
그러나 <디펜스21+> 취재 결과, 마이크로소프트 한국 지사의 강경한 조치는 주한미대사관에 파견되어 있는 미 국제무역위원회 소속의 상무관들의 압력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소식통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 한국 지사장이 주한미대사관에 호출되어간 시점은 지난 19~20일 사이이다. 국방부와 막판 조정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시점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미 국제무역위원회 상무관들의 호출을 받은 것이다. 미 국제무역위원회가 미국의 대외교역이 국내생산 및 고용 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대통령 직속 기관임을 감안하면 국방부와의 협상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결정적인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국방부와의 저작권 분쟁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줄곧 “한미FTA와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해왔다. 그러나 미 국제무역위원회의 입장은 다른 것으로 보인다.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해 주한미군 전력을 증강해 준다는 ‘당근’의 이면에는 통상 현안을 통해 한국 정부를 강하게 압박한다는 ‘채찍’이 준비되어 있다”며 “아무리 가치동맹을 말한다 해도 한미관계의 현실은 냉혹한 생존 게임”이라고 말했다.
사태가 여기까지 왔지만 국방부는 여전히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저작권 침해 사실을 은폐하는 데만 급급한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에서 사용하는 21만대의 컴퓨터가 모두 접속하는 백신 업데이트 서버는 국방부가 낸 국방바이러스방역체계 제안요청서(RFP)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서버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쪽에서는 21만 대에 달하는 컴퓨터가 이용하는 바이러스 업데이트 서버에 적정 수준의 서버 접속권(CAL)을 구입하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국방부는 서버 접속권 구입은 고려하지 않은 채 백신 제공업체에 서버 프로그램을 리눅스로 바꾸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 임시방편책에 병사들만 불이익
문제는 소프트웨어를 교체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을 사용한 기록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법정으로 갈 경우 손해배상은 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바이러스 업데이트 서버 제안요청서에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사이버안전센터에서 인증한 서버 소프트웨어만 사용할 것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인증을 받지 않은 리눅스를 사용하는 건 규정 위반이란 점도 문제다.
심지어 국방부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일반 병사들이 이용하는 사이버지식정보방의 서버 접속권을 C4I 체계로 전용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국방부의 계획이 실행된다면 병사들이 외부와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인 사이버지식정보방 운영이 전면 중단된다. 국방부가 저작권 문제를 제때 해결하지 않은 책임을 병사들이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다.
»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한미FTA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에 대한 끝장토론에서 야당쪽 인사들이 불참한 가운데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국군의 전쟁수행체제를 전면적으로 마비시키는 C4I의 사용 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어떻게든 막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대책을 마련하든 미국에 대한 의존심리, 공짜심리에 익숙해있는 국방부는 미국과 말만 잘 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임기응변에만 골몰하고 있다. 국방부는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국방전산시스템을 독자적으로 개선하든, 정당하게 사용료를 지불하고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든 어떤 선택이 필요한 시점에서 아무런 정책적 결정도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을 앞두고 우리 국방시스템 전체에 미증유의 혼란이 초래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한국 합참이 전작권 전환을 앞두고 500억원을 투자해 미국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개발한 지휘통제시스템인 AKJCCS에 대해 주한미군쪽이 “사용이 불가한 불안정한 시스템”이라며 사용하기를 거부해 전작권 전환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행안부 문체부 등 다른 부처도 발등의 불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손건익 차관의 지시로 각 부서의 정품 소프트웨어 현황을 점검하라는 문건을 내려 보냈다. 이 문건에서 보건복지부는 국방부의 사례를 명시해 불법 소프트웨어 근절을 지시했다. 이 처럼 현재 각 정부기관은 국방부 사태를 거울삼아 불법 소프트웨어 근절을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다음 주 중에는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를 포함한 정부기관이 모여 불법 소프트웨어 근절에 대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앞서 6월 14일에는 한미FTA 이행을 위해 대통령 훈령으로 ‘공공기관의 소프트웨어 관리에 관한 규정’이 제정됐다. 이 훈령에서는 공공기관은 반드시 정품 소프트웨어만 사용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20일 국방부에 대표 변호사 명의로 소프트웨어 사용 현황 확인 기간이 지났다는 공문을 보내 “취할 수 있는 모든 방안들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전달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장하는 저작권 침해 규모는 현재 공개된 문서로 밝혀진 것만 670억 원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시하는 규모를 인정하지 않은 채 연간 5억 원 정도만 투입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규 <디펜스21+> 기자 ppankk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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