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도시네트워크 구상을 위한 대학간 협력
지난 15년간 한중일 시민사회는 비록 제한적이지만 3국 공동의 역사교과서를 출간하는 성과를 내면서 ‘아시아인’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영토 갈등과 역사 갈등은 ‘내셔널리즘’을 또다시 소환(recall)해냄으로써 ‘민족’과 ‘국민’의 정체성을 또 한번 부각(강화)시켰다.
민족주의가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 형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일국 안에서 공존하는 ‘민족’의 다양성이 아시아인의 구성요소로 재조명되는 것이 ‘국가’에 포섭되고 위탁됨으로서 특정 민족으로 융합되는 국가형성의 과정보다 훨씬 더 다양성과 포용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아시아’를 구성하는 원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아시아인이 될 수 있는가?
본 글은 21세기에는 도시의 성장과 확대로 인하여 ‘도시’자체가 공동체의 핵심적인 ‘유니트’로 부각되고 있는 것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좀 비약하면 스스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도시 곧 ‘도시 국가’의 탄생을 21세기 새로운 공동체로 상상해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의 근거에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평화적 속성을 우선가치로 삼고자 하는 바램이 있다. 기존의 민족국가 혹은 근대국가가 ‘전쟁 수행능력’을 핵심적 기능으로 당연시하던 패러다임과 달리 ‘무력을 통하지 않고 평화를 구축할 수 있는 도시’의 속성을 핵심적 구성요소로 하는 ‘평화도시’의 가능성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도시의 역동성과 활력은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요소들의 부딪힘과 교류를 바탕으로 성장해왔으며 이른 바 ‘Civicus’ 곧 시민정신 또한 여기서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더욱 강제적으로 병합된 오키나와, 특별자치도시로 인정받았지만 정치적 불임상태에 있는 홍콩, 남북간에 새로운 협력도시로 탄생한 개성 등은 모두 ‘국가’라는 공룡에 의해 도시의 생기와 활력은 물론 그 자율적 성장이 위협을 받고 있다.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은 국가를 사이에 두고 도시라는 구체적인 삶의 공간 안에서 획득되는 삶의 자아와 국가를 넘어서는 보편적 자아를 획득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것이다. 또한 그건 동시에 서구에 대응하는 오리엔탈리즘으로서의 아시아가 아니라 아시아의 다양성 그자체가 존중되는 문화적 다원주의로서 정체성이다.
평화도시네트워크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평화도시는 정치적으로 독립을 요구하거나 국가를 거부하고 반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대신에 평화도시는 국가가 무력에 의지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을 외교적 수단으로 선택하고 평화를 추구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도시 자체가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자치권을 행사함으로써 국가권력과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첫째, 자치권의 근본적 변화 예컨대 지역주권(local sovereignty) 혹은 도시주권(city sovereignty)을 존중할 수 있는 제도적 변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곧 지방자치제도가 아니라 연방제 혹은 자치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네트워크형 국가제도를 탐색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둘째, 이것이 지역주권 혹은 도시주권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국가의 성격이 기존의 민족국가(nation state)가 아니라 시민국가(civic state)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곧 국가 스스로를 항상 정당화하는 애국주의의 논리가 앞서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한계를 인정하고 잘못을 사과할 수 있는 국가의 품격(state virtue)을 고민해야한다. 예컨대, 핵무장 혹은 군사적 강국으로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제국이 주도하는 동맹외교의 틀에서 독립적일 수 있는가, 기후변화 등 지구촌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적극적으로 지려고 하는가, 사회적 약자와 이주민들에 대한 공적 책임을 질 수 있는가, 빈곤문제와 격차문제 등에 대하여 국가는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영토갈등과 역사갈등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내셔널리즘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롭고 성찰과 상생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까 등등 수없이 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다른 시각으로 국가의 역할을 상상하고 이를 설득력있는 정책으로 구성해낼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평화도시는 국가를 넘어서는 도시간 연대와 협력에 기초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지역(region)은 국가간의 협력 뿐 아니라 훨씬 더 많고 다양한 도시간의 우정과 협력을 통해 국가가 주도하는 가치와 질서에 때로는 대항하고 때로는 협력하는 보다 독립적인 연대의 프레임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오키나와와 제주도의 미군기지와 해군기지 반대 운동은 비록 미력하지만 그 대표적인 사례일 수 있다.
넷째, 평화도시는 기본적으로 아래로부터의 변화라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단순히 민주주의의 원리가 중요하다거나 누가 자치단체장이 되는가 만으로는 평화도시를 이루기 어렵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평화도시를 구성하는 바닥(bottom)이 존재하는가, 그 바닥의 주요 구성요소들은 무엇인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여기에는 다양한 시민들, 지역시민사회단체, 종교단체, 협동조합, 중소기업, 상점, 학교, 대학, 언론, 자치단체등 사회의 모든 구성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다섯째, 평화도시가 실천적이고 실질적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평화의 상상력을 공동의 바램으로 전환시켜내는 ‘마음의 체계’ (mind set)의 변화가 필요하다. 예컨대 동북아에서 ‘북한문제’는 이러한 마음의 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분단의 상처로 깊이 내면화된 남북갈등은 남남갈등으로 확산되어 왔고 납치사건으로 폭발한 일본의 대북인식은 북한을 상식 밖의 집단으로 이해시켰으며 북미관계의 평행선 또한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체계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NGO로서의 대학은 평화 도시네트워크의 모멘텀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대학의 기능과 역할은 여러 가지로 설명되어 왔지만 최근의 대학은 사회에 문제제기를 하거나 방향을 제시하는 선도적 기능보다는 취업경쟁력을 높여주는 취업 사관학교로서 기능하는 경향을 띄고 있다.
만일 대학을 하나의 교육기관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거대한 NGO로서 바라본다면 대학은 위에서 언급한 평화도시의 바탕을 이루는 요소로서 매우 풍부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기관으로 이해된다. 다양한 잠재력을 가진 젊은 세대가 밀집해있으며, 기억의 문제 혹은 마음의 회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식인들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고 캠퍼스라는 공간 곧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비즈니스 세계와는 다른 시공간을 구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나가사키와 수원(화성, 오산을 포함한 산수화)을 모델로 하는 평화도시의 구상과 평화도시네트워크에 한신대와 나가사키대학의 새로운 실험을 이번 워크숍을 계기로 구상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구상해본다면 관련 지식인들이 평화도시 담론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공동의 교재를 작성하며, 다양한 교과/비교과 과정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하나라도 시작하여 점차로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 여기에는 지역의 인물, 사건, 장소를 발굴하고 이에 대한 기억을 성찰함으로써 미래의 역사와 평화의 가치와 연결시킬 수 있는 상상력을 키워갈 필요가 있다. 오늘의 워크숍 또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레 속에서 무엇이 우리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으며 기억은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발제들로 평화를 위한 도시간 협력에서 대학은 어떻게 역할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해주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이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바탕, 곧 바탕의 다양한 주체들을 설득하고 포용해가는 코디네이팅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되, 콜롬버스 달걀 같은 평화도시의 실현은 ‘NGO로서의 대학’ 그리고 평화에 대한 상상력과 그 담론의 확산, 그리고 국가를 가로지르는 공동의 교육과정을 통해서 그 첫 삽을 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