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달이라는 뜻의 몽골의 설 ‘차강살’

2015.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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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달과 푸른 하늘. 몽골의 설 ‘차강 사르(tsagaan sar)’를 그대로 풀어 쓰면 ‘하얀 달’이란 뜻이다. 이것은 하늘에 뜬 하얀 달, 또는 음력으로 정월 한 달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차강살’은 봄의 시작을 의미하며 이 때부터 차가운 겨울 공기 뒤에 숨어있는 봄의 미풍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몽골사람들의 이야기일 터이고, 외국인에게는 그냥 똑같은 겨울 추위의 연속일 뿐이다. 

 

 나담과 차강살


  한국에 추석과 설의 2대 명절이 있다면, 몽골엔 나담과 차강살이 있다. 몽골의 차강살과 우리의 음력 설날이 대개 같고, 금년, 2015년은 한국과 같은 2월 19일에 들어 있다. 차강살이 한국설날과 다른 날짜가 될 수도 있는 것은, 몽골서부에 있는 툭수부양트(Tegus Buyantu; Төгсбуянт) 사원의 스님들이 관리하는 노랑(黃色) 칼렌더에 따로 정하는 몽골 음력이 따로 있어 이를 따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에 새로운 해는 ‘우유의 달 (milk month)’ 이란 이름으로 가을에 시작되었다. 호랑이 해의 9월에 하얀 옷을 입는 데서 시작된 차강살은 1206년 징기즈칸이 초원을 통일하면서 세운 대몽골, 즉 이흐 몽골 울스의 탄생을 계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징기즈칸은 특별히 공이 많은 88인을 선정해서 치하해 주었다. 옛날의 칸들 역시 차강살에 공적이 있는 자들을 표창하고 죄인을 사면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국가의 영도자들의 통지행위로 이어진다. 오늘날에도 훈장과 메달을 수여하는 행사가 자주 있고, 서로 축하하는 자리가 많은 것이 필시 소련시대의 유산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징기즈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몽골 고유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수 있다. 이처럼 차강살은 몽골에서 국가의 단합, 전통과 문화의 계승, 사회적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의식이자 축하행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전 소련체제에 속해 있을 때도 차강살은 ‘유목민의 축제’란 이름으로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고 한다. 서양의 달력 역시 그 근원을 따져보면 원래의 모습에서 크게 변했는데, 이는 그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즉, 기원전 로마의 2대왕 누마는 달력을 개정하면서 첫 달을 세 번째 달로 바꾸고, 11월과 12월이었던 달을 앞으로 가져와서 1월로 2월로 한 것이다. 그래서 9월 이후의 명칭이 본래의 의미와 어긋나게 된 것인데, 예를 들어 10월, 옥토버(October)는 문어(Octopus)의 발이 8개인 것처럼 원래 여덟 번째란 의미에서 10월로 밀려난 셈이다.

 

  섣달그뭄의 비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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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보브라 불리는 상위에 올라가는 딱딱한 밀가루 과자


 차강살은 다시 설날과 우리의 섣달 그믐에 해당하는 ‘비퉁’ 으로 나뉜다. 그래서 설날은 보통 정월 초하루에서 초사흘까지 3일에다 그믐날 하루를 합해 4일을 논다(금년은 2월 18일 오전까지 근무). ‘빛이 없이 깜깜하다’, ‘막히다’라는 뜻을 지닌 비퉁은 떠나는 해의 마지막 만찬을 즐기면서 새로운 해를 맞는 것을 의미한다. 몽골 사람들은 비퉁이 되기 전에 세 가지 일을 마무리 한다. 첫째, 주변 환경을 정리한다. 둘째, 마음을 정리한다. 셋째, 음식을 마련하는 일이다. 비퉁을 위해 장만하는 음식을 ‘비툴릭’이라고 한다. 비퉁과 차강살을 맞이하는 데 필요한 음식준비를 할 때 친척들이 함께 모여 서로 도와주기도 한다. 몽골 주부들의 음식준비는 일찍 시작되어, 만두 (보-즈) 빚는 일을 명절 2-3주 전부터 한다. 양고기는 오-츠라고 해서 통째로 내놓거나, 턱을 가르지 않은 머리 부분을 통째로 삶은 것도 있다. ‘울보브’라는 딱딱한 밀가루 과자와 그 위에 각설탕, 유제품, 하얀 사탕 등을 놓아 하얀색으로 장식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유제품과 수테체(우유차), 아이락(마유주), 낙타젖술과 같은 음료, 찐만두 보-즈와 이보다 더 작게 생긴 반쉬도 준비하는데, 많은 양의 만두는 곧 부의 상징이기 때문에 가급적 많이 만들어낸다. 섣달 그음엔 특별히 배가 부를 때까지 먹는 풍습이 있는데, 배부르게 먹으면 다음 해 배가 고프지 않게 지내게 된다는 속설 때문이다. 최근엔 차강사르를 기해 씨름 경기를 하고, 이를 라디오나 TV를 통해 중계한다. 울란바토르의 경우 자시(11시 40분)가 되면 불교사원인 간등사에서 예불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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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 한 마리를 잡아서 통째로 엎어놓은 오-츠라 불리는 몽골의 전통음식


 차강살 아침엔 ‘어워’에 가서 복을 빌기도 하고 세배객들이 친척집을 다니며 인사를 나누는데 우리처럼 엎드려 절하는 대신, 아랫사람이 부모나 손윗사람에게 인사하고 팔을 내밀어 상대의 팔꿈치 아래를 떠받드는데, 처음엔 이런 예법이 서툴러 당황한 적이 있다. 아이들에겐 선물과 장난감이, 어른들엔 생활용품과 같이 뭐라도 준비해뒀다가 나눠주는 것이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세뱃돈 역시 우리와 다른 점은 작은 액수일지라도 젊은 사람이 윗사람에게 드리는 것이 생소하다. 어른들은 코담배를 주고 받으며 지난 겨울을 어떻게 보냈는지 얘기한다. 차강살엔 다투지 않고, 사냥하거나 도축을 하지 않고, 과음하거나 칼과 무기를 지니지 않는다. 차강살은 몽골인들의 즐거운 축제이고 우리의 설날이다. 차강살이 의미하는 ‘하얀색’은 좋은 일과 상서로움을 나타낼 때 반드시 들어가는 관용어라 하는데, 흰색 옷을 입은 백의민족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 아닌가. 그 옛날 몽골 훈족과 우리가 한겨레였음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글은 남북물류포럼( http://www.kolofo.org/) 에 실린 칼럼을 물퓨포럼과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 


몽골 울란바토르/강재홍 전 한국교통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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