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저물어 가는 제국의 정치 3

2016. 0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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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가는 제국의 정치-혼돈과 분열의 미 대선

<기획을 시작하며>


1. 전망의 부재
 -아무도 답하지 않는 미국이 직면한 문제들/피터 밴 뷰렌 작가이자 정치평론가


2. 백악관의 문을 두드리는 사회주의자 샌더스/바스카 순카라 언론인 (<자코뱅(뉴욕)> 발행인)


3.트럼프가 초래한 미 우파의 분열증/세르주 알리미 르몽드 디플로 발행인
 -트럼프는 파시스트인가/밥 드레이푸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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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 결혼한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 이런 사람이 어떻게 기독교 우파의 보루라 할 수 있는 미국 남부에서 이토록 인기를 얻는 것일까?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둘러싸고 대립 중인 앨라배마 주 공화당 당원들에게서 그 해답을 찾았다. 지난 2월 27일 토요일 앨라배마 주 모빌. 미국 남부 여러 주에서 치러질 대통령 후보 경선을 3일 앞두고 한 컨벤션 센터의 대회의장에서 앨라배마 주 공화당 집행부의 연례회의가 열렸다. 공화당 유력인사 수백 명이 회의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보다 쉽게 눈에 띄는 흑인 의원 한명을 마주쳤다. 뉴욕 억만장자가 아주 인기 있을 듯한(3일 후, 트럼프가 경선에서 승리를 거두며 인기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리고 공화당 의원이 모두 백인인(1) 주에서 만난 광경치고는 참으로 역설적이었다.

 회의 중 트럼프 후보의 이름이 거론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두의 머릿속에 트럼프 후보가 자리하고 있었다. 트럼프의 성공에 당의 미래도 좌지우지될 수 있다. 어느 선거에서나 사람들이 싫어하는 후보가 한두 명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주요 라이벌인 텍사스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 후보만큼이나 불쾌한 이 남자를 어떻게 쓰러뜨릴 수 있겠는가. 동료인 다른 공화당 의원들조차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경우,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경영에서라면 적대적 매수라 불리는 상황이다. 공화당 의원 절대다수를 포함한 수많은 공화당원들은 트럼프가 가진 이데올로기적 신념이라고는 지나친 자아도취와 권위주의적인 충동뿐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링컨과 레이건의 정당”을 걱정하기보다는 자신이 운영하는 고급 호텔이나 보드카 브랜드의 명성에 신경을 더 쓰는 사람이 바로 트럼프다. 이번 2월 27일, 모빌에서 공화당 간부들은 약간 절망적인, 어쨌든 예측 불가능한 실험을 준비했다. 트럼프가 승리의 축포를 받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며 전자 투표를 통해 공화당의 근간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장래에 집행부가 다양한 결의안을 검토할 수 있게 해줄 이 ‘작은 투표상자’의 기능을 미리 시험해보기 위해, 300명이 넘는 공화당 위원들은 먼저 좋아하는 전쟁영화를 “뽑아”보았다. <패튼 대전차 군단>이 <진주만>을 압도적인 표차로 꺾었다. 이 선택의 결과가 말해주듯 당 간부들은 대규모 전투, 그리고 승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욱 의미 있는 투표는 그 다음에 나왔다. 위원들의 76%가 앨라배마의 다음 경선이 ‘비공개’로 진행돼야 한다고 요구했다(이번 경선은 ‘개방형’ 경선이었다). 다시 말해, 당의 유권자들에게만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목표는 명백하다. 수많은 민주당 유권자들이나 무소속 후보 지지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이끄는 트럼프와 같은 비정통파 공화당 후보가 2020년에는 쉽사리 후보에 나서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도박장을 몇개나 소유한 트럼프가 혹여나 자신들의 메시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해, 앨라배마에서 “모든 형태의 도박”을 불허하는 또 다른 결의안도 나왔다. 회의의 나머지 프로그램은 고전적인 내용이었다.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의 파괴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고발은 대통령 선거가 미국 연방 대법원의 정치적 공정성과 낙태권리를 제한하자는 새로운 요구, 총기 규제에 대한 반복적인 거부 등을 결정할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각인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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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얼리티 쇼와 극단주의가 빚어낸 위력


  회의장 입구에 놓인 여러 개의 탁자와 패널에는 아직 경선에 참여 중인 테드 크루즈, 마르코 루비오, 존 케이식, 벤 카슨 등의 후보들에 대한 선전 내용이 가득했다. 한쪽에서는 후보들의 이름이 적힌 배지와 작은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트럼프와 관련된 홍보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뉴욕 출신의 이 미운 오리 새끼는 이미 재앙을 점치고 있는 공화당 간부들에게서 별다른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다가오는 11월 트럼프가 참패하든, 트럼프가 당선되든 재앙은 예고됐다.

  하지만 트럼프가 무슬림들을 비난하는 것이, 그가 미움을 사는 첫 번째 이유는 아니다. 이날 발의된 동의안 제 2016-06호는 미국이 “극단주의 이슬람과 관련이 있는 국가 출신의 난민들”의 망명을 거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공화당의 한 의원은 이 동의안을 이렇게 옹호했다. “세계의 절반이 미국에 와서 미국인들을 죽이고 싶어 하는 느낌이다.” 그 느낌이라는 것은 이 의원이 지지하는 동의안만큼 모호하고 대략적인 그의 국제정치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회의장에 들어온 프랑스인에게 (아무리 악의 없는 질문이라지만) 프랑스 국민의 대다수가 무슬림이냐고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의안은 가까스로 부결됐다.

  이어지는 (150달러라는 가격에 비해 형편없는) 저녁 만찬에서는 서빙을 하는 사람들의 3분의 2가 흑인이었고, 만찬 참석자의 98%가 백인이었다. 각 후보들은 만찬장에 대리인을 보냈다. 카슨 후보의 경우 아들을 대신 참석시켜 은연중에 트럼프를 비난하며(어쨌든 13일 후 카슨 후보는 트럼프 지지를 결정한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라는 성경 구절로 연설을 시작했다. 크루즈 후보의 대변인도 같은 레퍼토리를 인용했지만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 받을 것이다”라는 구절을 통해 크루즈 후보가 가진 일관된 이데올로기적 신념을 강조했다. 루비오 후보는 복음교회에서 아주 인기가 많은 릭 샌토럼을 밀사로 급파했다. 2012년 경선 후보로 나섰던 샌토럼은 앨라배마 경선에서 승리를 거둔바 있다. 그리고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한 지역의원이 “트럼프의 최고 장점은 대중을 움직인다는 점이다”라고 말하며 트럼프 후보를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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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앨라배마 미식축구장에서의 트럼프 유세


 마지막으로 만찬의 하이라이트가 돌아왔다. 만찬 기획자들이 가장 많은 돈을 썼을 게 틀림없는 순서다. 지금은 고액 강연료를 받는 연사가 된 옛 리비아 사설 보안요원 마크 가이스트가 2012년 9월 벵가지에서 발생한 미국 총영사관 공격(2)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너무나 자세한 나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말이다. 그는 이날 저녁 모두가 만장일치로 동의한 명백한 결론을 이끌어냈다. 오바마 대통령의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의 태만이 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대사의 죽음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선거운동의 방향은 결정됐다.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실업과 기업의 해외 이전을 경험한, 분노한 미국인들이 결정한 것이 아니다.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비로 이동경비를 마련하고 호텔을 예약했으며 만찬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이 지역 최저시급인 7.25달러(미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를 받고 2~3주를 일해야 마련할 수 있는 비용이다.

  오바마와 힐러리에 대한 공화당 간부들의 반감이 트럼프에 대한 불신을 잠재울 수 있을까? 앨라배마 주 공화당의 한 위원회에서 흑인으로서 위원장을 맡고 있는 본 포는 모든 게 명백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는 뉴욕 출신 부동산 업자의 인기가 미국 유권자들 사이에서 TV 리얼리티 쇼와 극단주의가 뒤섞여 만들어낸 위력이라고 생각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는 염려하고 있었다. “히틀러도 인기는 많았다. 하지만 그 끝을 생각해보라. 트럼프가 우리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된다면 너무나 창피할 것이다. 나는 절대로 이 나라에서 그에게 투표할 수 없다.” 본 포는 앨라배마 대학에서 컴퓨터 보안을 가르치는 교수답게 이렇게 덧붙였다. “내 IQ는 50이 넘는다. 당신이 뇌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 뇌의 제어화면에 트럼프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사태는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는 공화당원이 아니라 민주당원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쉽게 속지 않는다. 이 사람은 거래가 본업인 사람이다. 그렇기에 나는 9월 중순에 (두 곳의 큰 정당에서 공식적으로 대선 후보를 선정하고 나면)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의 경쟁자가 된다고 해도 그리 놀랍지 않을 것 같다. (아쉽게도) 당에서는 다른 후보를 새로 내세울 시간이 없다.”

  트럼프의 엉뚱한 계략이 놀라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공화당원들이 그의 비정형적인 정치이력, 그리고 종종 그가 당의 정통성을 해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염려하고 있다. 공화당원들은 트럼프가 자신의 세 번째 결혼식에 힐러리 클린턴을 초대했던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심은, 분노에 찬 지역 의원들이나, 폭스 뉴스, SNS, 음모이론에 의해 단련된 당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3월 16일 애리조나에서 크루즈는 “거의 모든 언론이 좌파 지지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최선을 다해 우리가 도널드를 후보로 뽑게 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이길 수 있는 지구상 유일한 후보가 도널드라는 것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라며 언론들을 비난했다.

  바버라 프리스터는 공화당 집행부 위원이다. 올곧은 신념을 가진 80대의 그는 1874년부터 2010년까지 136년 간 민주당이 집권한 앨라배마 주에서 최초의 여성 공화당의원이 됐다. 프리스터는 이제 이 나라에서 가장 강경한 공화당 의원이다. 그는 민주당 출신의 앨라배마 주지사인 조지 월리스를 만나 대결한 바 있다. 월리스는 기이한 행보에서 종종 트럼프의 비교대상으로 언급되는 인물이다. 기존 질서와 지식인들에 반대하며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고, 민중을 선동해 인종차별을 고수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시민의 권리를 탄압하려했던 월리스의 정치 인생은 미국 현대사에 고스란히 남았다.

  월리스는 미국 대선에 4차례나 출마해서 1968년에는 앨라배마를 포함한 남부 5개 주에서 66%의 득표율로 승리하기도 했다. 강력한 두 명의 적수,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과(대통령 당선) 민주당 출신 부통령 휴버트 험프리와 대결했던 것을 감안하면 의외의 득표율이었다. 월리스의 선거 집회는 요즘 트럼프의 선거 집회처럼 야유와 고성이 오갔다. 그럴 때마다 월리스는 방해꾼들에게 “세수하고 면도나 하고 오라”며 맞받아쳤다. 월리스는 기분이 아주 좋을 때 그들에게 “신고 있는 샌들을 헌정하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1972년 백악관 입성을 위한 세 번째 도전에 나섰을 때, 암살 시도로 인해 휠체어 신세가 됐다. 하지만 이 사건도 그를 정부의 관직에서 멀어지게 하지는 못했다. 월리스는 네 번이나 주지사에 당선됐다. 프리스터 위원의 딸로서 남편 케빈과 함께 공화당원으로 활동 중인 앤 베넷은(부부는 2012년 공화당 전당 대회에 파견된 바 있음) 말했다.

  “월리스의 힘은 패배한 국민들 즉 남부 국민들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트럼프의 위력도 이렇게 설명된다. 오바마는 아메리카를 패배한 민족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패배했고, 이슬람 국가 조직(ISO)에게도 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누가 됐든 주먹에는 주먹으로 맞서겠다는 약속만 하면, 그 사람을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한다.”

  너무나 나약한 지도자 때문에 패배한 민족. 트럼프의 사고에 그나마 일관성 있게 자리잡고 있는 주제이다. 그가 나선 모든 전투에서 즉, 미국 대통령이 되려는 전투에서 그에게 “이기고”(트럼프가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 싶게 만드는 사업가의 자아도취 외에도 권위적인 민족주의는, 여러 잡지에 그의 사생활과 재산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리기 시작할 때부터 그에게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 이런 그의 기질로 새삼 주목받고 있지만 트럼프는 이미 25년 전에 <플레이보이>와의 긴 인터뷰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3)

 트럼프는 인터뷰를 통해 당시 두 초강대국의 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경멸스러운 방식으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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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의 국제정치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지도. 아프리카는 오바마의 출생지,캐나다는 경선에서 물리쳐야 할 테드 크루즈의 고향 등 단편적인 인식 


 반란은 총알이 아니라, 투표용지로 일어난다


  트럼프는 이 인터뷰에서 먼저 미군으로부터 공짜로 보호받고 있는 동맹국들(일본, 독일, 그리고 특히 걸프만 국가들)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너무나 관대한 태도를 비난했다. 이 동맹국들이 자국에서 무역과 관련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소련의 대통령(고르바쵸프)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가 전복될 것이라고 본다. 나약함을 드러내보였기 때문이다.” 1990년 3월, 로널드 레이건이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떠나간 백악관에서 공화당 출신의 새로운 대통령(부시)이 임기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벌써부터 전세계의 지도자들은 “우리를 무시하고 있고”, “우리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우리를 짓밟으려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트럼프는 경기장에 들어가 “미국의 위대함을 되살리기 위해” 자유무역 협정과 싸우고, 남쪽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하고 있다. 그 사이 트럼프는 그가 만든, ‘전세계가 만만히 여기는 미국의 어리석음을 이용해먹는 국가’ 목록에 중국과 멕시코를 올렸다.

  공화당 집행부의 프리스터 위원은 월리스를 통해, 국가의 문제 대부분이 소수집단과 외국인, 범죄자들을 보호하는 정치인들의 탓이라고 말하는 선동가를 이미 경험했다. 윌리스는 기자들을 비난했으며,  자신을 “보통 사람의 유일한 대변인”이라 칭하면서 노골적인 언행을 일삼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했던 언론조작 전문가로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 프리스터는 트럼프를 경계한다. 그리고 딸 앤과 사위 케빈처럼 프리스터도 주기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확인해 이웃들과 신자들에게 트럼프를 쓰러뜨릴 만한 공화당 후보를 소개하려 하고 있다. 세 명 모두 루비오와 크루즈 사이에서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크루즈의 손을 들어주었다. 헛된 일이었다.(4)

  베넷 부부의 사회적, 문화적 세계관에서 트럼프보다 생소한 것은 없다. 앤은 미국 풋볼 팀으로 유명한 작은 대학도시 오번 근처에 800헥타르에 달하는 옛 농장을 소유하고 있다. 앤의 남편은 토지를 관리하며 사슴사냥을 기획한다. 침례교 신앙은 이들 부부의 존재와 삶에 있어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에는 실력과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점잖고 낮은 목소리로 미국 헌법 수정 10조(5)와 지방권력, 남부지역의 농업전통을 철저히 존중하는 토머스 제퍼슨식의 제한된 정부 형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갑자기 스캔들 폭로 전문매체에 자신의 사생활을 늘어놓고, 레슬링의 링 위에서 몸에 딱 붙는 옷을 입은 두 명의 톱모델에게 둘러싸인 이혼한 억만장자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이들 부부가 속한 공화당에서 대표 자리에 서겠다는 것이다!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는 이 남자는 TV에 나와서,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미군들에게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법을 어기라고 주저 없이 명령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의회의 지지 여부에 상관없이 여러 개의 무역 조약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한다. 앤 베넷은 씁쓸함과 당황스러운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는 그가 비난해마지 않는 기존체제에 순응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뉴욕이나 동북 지역에서 우리를 짓밟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이스트먼 코닥에서 고위 임원을 지냈던 케빈 베넷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트럼프가 토론회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집권 시절을 얘기하며 “군림했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역사, 특히 미국의 남북전쟁 역사에 심취하고, 연방국기에 애착을 갖는 그는 이미 자신의 정당이 에이브러햄 링컨을 표방하는 것을 탐탁해하지 않는 터였다. 이 맨해튼 억만장자의 권위주의적인 실수들은 케빈에게 너무 많이 ‘대해방군’의 북군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과 다른 트럼프의 남부지방 지지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가족 모두가 줄곧 공화당에 투표해왔다는 다이앤 제이를 오번에서 만났다. 그는 핸드백에 스미스웨슨 38구경을 넣고 다닌다. 그리고 지역신문은 너무 좌편향 됐다고 생각해(논란의 여지가 있는 판단) 읽지 않는다. 그는 트럼프의 유권자들을 분노한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것을 가장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이는 두 정당 모두에게서 신뢰를 잃어버린, 그동안은 그 의지가 알려지지 않았던, 이제는 자유로워진 미국시민들의 움직임이다. 공화당의 기득권층에서는 많은 약속을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공화당은 그동안 단순 노동자들에게 그래왔듯, 트럼프를 멸시한다. 그가 억만장자인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트럼프의 돈은 그가 번 것이다. 그는 말만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냈다. 우리 당 사람들은 그저 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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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산 갑부 트럼프의 뉴욕 빌딩과 터키의 휘황찬란한 트럼프 타워


  당 지도부는 트럼프 후보의 길을 막기 위해 연합했다. 그 결과, 당 지도부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내가 좋아하는 마이크 허커비가 분명히 말했다. ‘공화당의 기득권자들은 이러한 반란이 총알이 아닌 투표용지를 통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이다.”

투표용지(Ballots)와 총알(Bullets)의 변증법은 1964년 흑인 운동가 맬컴 엑스(X)의 아주 유명한 연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6) 사실 미 의회 공화당 의원들을 향한 제이의 반감은 분노와 잘 맞아 떨어진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공화당의 기득권층은 가면을 벗고 당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대신, 당을 분열시키고 힐러리 클린턴에게 승리를 선사해주려 하고 있다. 내가 도널드 트럼프를 높게 평가하는 점은, 자기 돈으로 선거 운동을 해나가고 있고, 다른 이해관계가 얽힌 이들에게서 돈을 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원 소수당 대표인 미치 매코널은 1년에 1백만 달러 이상을 벌고, 연방 하원의회 의장인 폴 라이언은 90만 달러 이상을 번다. 만일 누군가가 이들에게 ‘자, 이제 비용을 줄여봅시다’라고 한다면 이들은 아주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2008년 위기 때 다 태워 버렸어야 했다”


  트럼프에게는 매우 적대적이지만 케빈 베넷은 ‘월스트리트의 갱단’이라 칭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애정을 갖고 있다. “두 정당은 부유함과 도시라는 동일한 문화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이들에게 이 나라의 본질은 그저 양쪽을 오가며 살피는 땅 덩어리일 뿐이다. 2008년 위기 때 모든 것을 다 불태워 버렸어야 했다. 아주 힘든 시기가 됐겠지만 그래도 많은 부정부패를 뿌리 뽑을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 정치권과 대표적인 두 정당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다.

  이제, 반론이다. 2월 29일 월요일 오펠리카, 오번에서 멀지 않은 옛날 병 제조 공장에서 공화당 위원회의 연례 만찬회의가 열렸다. 1994년 첫 만찬의 참석자는 40명이 넘지 않았으나, 이날은 300명에 가까웠다. 국기에 대한 맹세와 기도가 끝난 후, 이 지역구 국회의원인 마이크 로저스는 민주당 의원들뿐만이 아닌 워싱턴의 동료 국회의원들을 향한 부패와 공모라는 비난에 대해 답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크루즈의 지지자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공화당 출신 국회의원들을 비난하고 있다. 이들이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에서 내린 주요 결정들(건강보험 개혁 또는 ‘오바마 케어’, 이란과의 핵 협상, 일부 이민자 추방 유예)에 대해 어떤 것도 무력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일을 하기 위해 그 자리에 뽑힌 것인데 말이다.

  이들은 ‘시스템’에 매수돼 크루즈의 표현대로 ‘워싱턴 카르텔’의 일원이 돼버린 것일까? 대통령의 거부권을 뒤집으려면 3분의 2 이상의 과반수가 필요하다고 로저스는 반박한다. 그리고 동료들에게는 고통을 인내할 것을 요구한다. “이 사회주의 행정부의 마지막 한 해 동안 우리는 별다른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임무는 더 나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공화당 대통령이 선출된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대통령의 서명을 받을 내용은 바로 ‘오바마 케어’의 철회에 관한 것이다. 그 다음은 은행들을 규제하는 도드 프랭크 법이다. 현 사회주의 행정부는 곧 그저 나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어떻게, 복음주의파의 표심이 아주 큰 영향력을 차지하는 정당, 그리고 그런 지역에서 트럼프가 이토록 쉽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인가? 제이는 이전에는 옛 침례교 목사이자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의 옹호자인 허커비를 지지했었다. 하지만 그는 현재, 불타는 신앙은 커녕 상스러운 말을 늘어놓고, TV에서 자신의 성적 매력에 대해 말하는  부동산 갑부 트럼프를 지지한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낙태에 반대한다. 그리고 학교 내 기도에 대해 찬성한다. 이보다 더 전통적인 것은 없다. 그리고 그와 그의 가족을 한 번 보라. 성공한 아메리칸 드림이다. 물론 그가 결혼을 세 번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로널드 레이건 역시 한 번 이상 결혼했었다. 배우였던 레이건은 불륜을 저질렀었다. 한 사람을 모든 면에서 비난하려 든다면 우리 중 죄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죄인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면 상원 전체가 돌에 맞아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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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심할 여지없이,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들과 직접적이고 단단한 관계를 맺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제이를 포함해 이미 90만 명을 넘어선 미국 내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모두 트럼프의 문자 메시지를 여러 번 받아보았다. 대다수의 언론과 예술가, 지식인들이 트럼프를 향해 쏟아내는 비난과 불편한 폭로전은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동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만든다. 제이는 말한다.

  “나는 트럼프를 신뢰한다. 우리는 사업가가 필요하다. 트럼프는 더 이상 증명해 보일 게 없다. 이미 그는 훌륭한 가족과 100억 달러를 가졌다.”

  실업, 저임금, 기업의 해외 이전, 미국 기독교인 정체성의 변질, 국경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연방정부의 무능력함, 미래에 대한 두려움. 거의 모든 문제가 아주 빠르게 이민자 문제로 이어진다.(7) 케빈 베넷은 말한다.

  “바로 이 문제가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 뛰어들게 한 이유다. 아무도 이 문제를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했다. 미국의 학교에는 이민자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이민자 학생들의 부모가 법적 체류자격이 있는지 확인할 권리가 없다. 법은 명확하지 않고, 학교의 권리를 보호하려고 하면 인종차별주의자 취급을 받는다. (멕시코 국경에)장벽을 건설한다는 아이디어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국경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맞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경을 개방했으니 말이다. 지금 사람들은 지쳐있다. 두 거대 정당 어디에도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의 불만을 살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 것이라는 걸 사람들도 알고 있다.”

  두려움이 쌓여갈수록, 트럼프의 주장에는 힘이 실린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침투하려했던 테러리스트 조직들에 대한 이야기는 앨라배마에서 며칠만 머무르면 들을 수 있다. 몇 톤에 달하는 마약과 1,200만 명의 이민자들에 맞먹는 외국군대를 보낼 수 있는 터널이 국경 아래에 만들어졌다는 식의 이야기들. 그러나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과 2012년 재선 이후, 공화당의 전략가와 여론조사관들은 이러한 두려움의 고착화는 선거 관점에서는 당에게 해가 되는 것이고, 어떤 대선후보도 히스패닉 표심의 전격적인 지지 없이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이민문제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언론인 앤 콜터도 현재 미국의 인구통계를 보면 지미 카터와 월터 먼데일이 레이건을 상대로 출마했던 때보다 덜 “하얗다”고 주장한다. 1980년 지미 카터는 레이건에게 압도적인 표차로 패했고, 4년 후에는 월터 먼데일이 레이건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콜터는 트럼프의 성공 가능성을 점친다. 물론, 콜터가 상대하는 대상은 미국 유권자들 중에서도 단일민족에 남성적인, 아주 한정된 부류다. 다가오는 11월, 힐러리 클린턴은 소수집단, 월스트리트, 페미니스트, 자유무역, 골드만삭스, 현상(現狀)을 대리하는, 이들의 어쩔 수 없는 대선 후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힐러리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임기와 단 하나의 임무는 바로 트럼프의 앞길을 막는 것이다.


미국을 분노케 한 3분짜리 영상


  이러한 동맹이 승리한다 해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버니 샌더스의 선거운동에서도 이런 식의 타협이 바닥을 드러냈던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정치계의 부패를 비난하는 샌더스의 연설문 내용이 바로 코앞 선거 캠프에서 그대로 발표되는 정도였다. 트럼프에 의해서만은 아니다. 크루즈 역시 “공화당 사람들은 민주당 사람들만큼 나쁘다. 너무 많은 이들이 로비스트나 대기업 등 월스트리트와 결탁해 저임금의 원인을 불법이민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다.

  기업의 해외이전이나 국제무역, 자유무역 문제에서는 다이앤 제이와 샌더스 지지 유권자 간의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보수주의 공화당 지지자 제이는 우리에게, 인터넷에서 급속히 확산 중인, 그를 분노케 한 3분짜리 영상에 대해 알려주었다.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의 협력업체인 캐리어의 사장이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일하는 1,400명의 직원들에게 자사의 생산공장이 멕시코로 이전된다는 사실을 발표한다.(8) 사람들의 야유 속에서 사장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사업이 오래 지속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전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이 이야기는 트럼프 선거운동 레퍼토리의 일부가 됐다. 노동자들과 조합원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여기서도 몇몇 패는 되돌려질 것이다.

  이번 선거운동 초반부터 공화당 유권자들은 과거 대통령들이나 대부분의 국회의원, 그리고 당 재정을 지원하고 당을 위해 조언하는 이들이 가진 것과는 정반대인 선택을 하려 한다. 이들이 레이건 시절부터 자신들의 정치적 정체성을 이루어 준, 그리고 많은 혜택을 가져다 준 것들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화당의 내전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남부 지역에서는 흔한 일이다. 다음 기사 참고. 브누아 브레빌, ‘두 개의 남부, 두 개의 미국Géorgie et Caroline du Nord, les deux Su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12년 10월호.

(2) Mitchell Zuckoff (그리고 Mark Geist), 13 Hours : The Inside Account of What Really Happened in Benghazi, Twelve Books, New York, 2014.

(3) Playboy, Chicago, 1990.3

(4) 2016년 3월 1일, 앨라배마 경선에서 트럼프는 43.4%를 득표했다. 크루즈는 21.1%, 루비오는 18.7%, 카슨은 10.3%를 얻었다.

(5) “본 헌법에 의해 미합중국 연방에 위임되지 않았거나, 각 주에 금지되지 않은 권력은 각 주나 국민이 보유한다.”

(6) 다음 기사 참고. Achille Mbembe, ‘극한 시련의 시대, 사라지지 않는 맬컴 엑스의 신화’(Malcolm X, un inépuisable mythe en temps d’extrême adversit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1993년 2월호.

(7)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 때문에 앨라배마 주 상원의원 제프 세션스는 2월 28일 상원의원 중 처음으로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8) <Carrier Air Conditioner (part of United Technologies) moving 1,400 Jobs to Mexico>, YouTube.com, 2016.2.11.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2016년 4월호 (91호)에 게재됐다. 



 <보조> 트럼프는 파시스트인가/밥 드레이퓌스 언론인




트럼프 파시즘.jpg

 도널드 트럼프는 과연 파시스트인가? 이민 배척주의자이자 민중을 선동하는 외국인 혐오자인 억만장자 도널드 트럼프. 그가 공화당의 대선 후보 자리를 꿰차겠다고 위협 중인 현재, 이 질문이 회자되고 있다. 이는 좌파 진영에만 국한되지 않는 질문이다.

“트럼프가 공화당을 파시즘의 벼랑으로 몰고 있다”

보수 성향의 <뉴욕타임스>는 한 사설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뉴욕타임스> 뿐만 아니라 신(新)보수주의 성향의 전문가 맥스 부트에서 중도주의 노선의 전 버지니아 주지사 짐 길모어에 이르기까지, 공화당원들도 같은 내용의 질문을 던졌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댓은 늘 하던 식으로 “도널드 트럼프는 파시스트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는 “트럼프가 아돌프 히틀러나 베니토 무솔리니 같지는 않더라도, 정치 성향을 보면 일반적인 미국의 보수주의자나 우파 포퓰리즘의 기존 모델 보다는, ‘프로토 파시스트'(1)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코미디언 루이스 C.K.부터 우익 평론가 글렌 벡까지, 유명인들에게 트럼프와 히틀러 간의 직접 비유는 유행이 됐다. 그러나 내게는 ‘프로토 파시스트’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게 느껴진다. 분명 트럼프가 부상하면서 많은 유권자들이 “트럼프는 파시스트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이 질문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그는 최근 이탈리아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말을 리트윗하면서 더욱 논란을 부추겼다. 부동산 거물인 그가 과연 ‘애국’주의자들, 백인우월주의 남성들(Angry White Men),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노동계층의 지지자들, 불만을 품은 보수 종교인들, 이슬람 혐오주의자들, 이민 반대주의자 등으로 연대를 황급히 결성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무솔리니처럼 성난 농민들이 쇠스랑을 휘두르며 행진하듯 11월의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파시즘, 미국에서는 불가능할까?


  트럼프가 정말 ‘프로토 파시스트’라면, 21세기의 미국에 파시즘이 출현하기 위해 어떤 요소들이 더 필요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최근 리처드 J. 에반스의 <(독일)제 3제국의 등장(The Coming of the Third Reich)>을 읽었다. 이 책은 1871~1933년을 배경으로 하며, 나치당의 고통어린 출범 및 성장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혹시 이 책을 읽을 생각이 있다면, 내가 고안한 방법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겠다. 머릿속에 2개의 칼럼을 만든다. 그리고 오늘날의 미국과 1920년대 및 1930년대 초의 바이마르 독일 간의 유사점과 차이점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다.

  아마도 유사점이 먼저 눈에 띌 것이다. 현재 미국이 불안한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미국의 위대함을 재건하겠다는 맹세를 반복하듯, 히틀러도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겪은 수모를 되갚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가 자신의 추종자들, 특히 백인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어려움은 멕시코 이민자들 및 무슬림들 탓이라고 강력히 설득하는 것처럼, 히틀러도 같은 방식으로 반 유대 정서를 부추겼다. 억만장자로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트럼프는 월가와 기업 로비스트들이 경제를 제멋대로 조작하고 정치인들을 꼭두각시로 만들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히틀러도 월가 및 런던 금융가, 그리고 독일의 기업들이 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부과된 막대한 배상금 부채를 독일에게 떠넘기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무책임한 중도우파 정당들(오늘날의 미 공화당을 생각하면 된다)을 지지한다며 신랄히 비난했다. 트럼프는 중국을 비난하고,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일가친척들을 살해하고 이라크에 매장된 석유를 차지하겠다고 협박했다. 이와 유사하게, 히틀러도 인간본성의 무모한 극단적 민족주의에 호소했다.


히틀러에 비견되는 트럼프의 파시즘


트럼프 히틀러.jpg
  그러나 유사점 못지않게 확실히 드러나는 차이점에도 주목하자. 미국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정착한 민주적 공화주의가 존재한다. 그러나 1920년대 독일은 그렇지 않았다. 지구 최후 초강대국의 경제는 2008년 대공황 수준으로 기울었지만, 1920년대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던 독일경제에 빗댈 수준은 아니다. 또한, 2016년의 도널드 트럼프와 1921년의 아돌프 히틀러 사이에는 소소한 차이점들을 무색하게 할 법한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히틀러는 초기부터 잔인한 폭력을 일삼는 준군사 조직, 즉 악명 높은 돌격대(SA)로 폭력을 휘둘렀다. ‘갈색 셔츠단(Brown Shirts)’이라고 불렸던 SA는 독일의 도시 한 복판에서 그들에게 반대하는 이들에게 폭력을 일삼았다. SA는 그 존재만으로도 정치영역 전반에 걸쳐 독일인에게 위협이 됐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도널드 트럼프, 또는 제 2의 트럼프가 자신을 따르는 무장단체를 거느리는 일이 가능할까? 그 대답은 놀랍게도 “그렇다”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끝까지 들어주었으면 한다.

  2010년,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무기소지에 관한 수정헌법 제2조를 따르는 급진주의자들이 버지니아 주의 ‘오픈캐리 법(Open-carry laws; 총기의 공개소지를 허용하는 법)’을 등에 업고, 포토맥 강의 포트헌트 공원에서 ‘헌법회복을 위한 집회’를 열었다. 그들은 이 행사에 총기를 소지한 채 참석했다. 그런데, 이 행사는 티머시 맥베이가 일으킨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 연방건물 폭파사건이 일어난 4월 19일에 열렸다. 그 당시, 나는 공원에서 1마일 가량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무기를 공공연하게 휴대하는 그런 정치적 시위가 국회의사당의 지붕 밑에서 열리는 것을 보며, 그것이 가능한 현실에서 사람들의 두려움, 분노, 혐오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인정하건데, 이 행사에 총기를 소지한 채 참석한 이들인 약 50명 정도였다. 약 2천 명은 총기소지가 불법인 워싱턴 D.C.에서 이와 유사한 비무장 집회를 열었다. 이미 수많은 총기소지 집회와 시위들이 수정헌법 제 2조 추종자들에 의해 열리는 이 나라에서, 오늘날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참할 것인가. 2016년 현재, 전미총기협회(NRA)의 효과적인 로비활동에 힘입어 미국 대다수의 주들이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총기의 공개휴대를 허용하는 오픈캐리법을 제정한 상태다. 한편, 미국의 50개 주 모두 총기의 은닉 소지를 허용하는 법(Concealed-carry laws)을 시행하고 있다. 즉, 워싱턴 D.C.를 제외하고,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공공장소에서 총기소지가 합법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잠시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자. 도널드 트럼프 또는 제 2의 트럼프가 오픈캐리법이 허용된 지역, 예를 들어 댈러스의 카우보이스 AT&T 스타디움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알린다. 그리고 지지자들에게 총기를 소지한 채 참석하라고 덧붙인다. 경선기간 동안 트럼프는 NRA의 수정헌법 제 2조 해석을 목소리 높여 지지해왔다. 그의 웹사이트에도 “수정헌법 제2조의 보호로 미국은 다시 위대해질 것이다”라는 항목이 있다. 텍사스 주 법에 의하면, 그의 지지자들 수천 명이 반자동식 무기들을 가지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완전한 합법이다. 그리고 당일 집회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총을 휘두르는 대원들을 바라보는 트럼프가 있을 것이다.

  트럼프총기.jpg


 이러한 집회가 즉각 몰고 올 비난들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거의 졸도 직전의 TV 평론가들부터 혹평하는 <뉴욕타임스>와 기타 신문사설들, 그리고 특히 도심지역 출신의 진보 및 중도성향 정치인들의 분노에 찬 맹비난들까지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들에 트럼프가 날리는 경멸에 찬 독설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NRA의 사랑하는 충견 공화당원들은 트럼프의 처사에 혀를 차면서도, 이 행사를 주최할 트럼프의 권리는 보호하고 나설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비슷한 행사를 다른 장소, 예를 들어 덴버, 피닉스, 인디애나폴리스, 마이애미 등지에서도 개최하고 “도널드 트럼프 헌법수정 제2조 사회를 창설하겠다”고 발표한다면? 아마 트럼프는 그 이름을 새긴 야구모자를 특별히 디자인해 생산할 지도 모른다. 미국 도시들 거리 곳곳에서 ‘트럼프 SA(Second Amendment, 헌법수정 제 2조) 사회’라는 이름의 새로운 단체가 총기를 소지하고 행진하는 날은 그리 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들은 어쩌면 기상천외한, 세기말적 SF영화 속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상황이 전개되는 모습을 보면,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의 초안 작업은 이미 진행 중에 있다. 남부빈곤법률센터(SPLC)의 최근 보고서에 의하면, 2015년 미국 내 증오단체가 급증했는데, 이전 두 해 동안 가파르게 감소했던 민병대 및 반정부적 ‘애국’단체들이 지난 해 874개에서 998개로 증가했다. SPLC는 이중 적어도 276개의 단체가 반정부 ‘민병대’였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그런 단체들은 자신들을 ‘새로운 세계 질서’에 반대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근거 없는 음모론에 가담하거나 극단적인 반정부 정책을 지지하거나 고수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1월 초, 미국은 수십 명의 백인 무장 민병대원들이 “연방정부의 압제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자” 오리건 주 연방 야생동물보호구역을 급습하는 것을 충격 속에 지켜보았다. 그들의 행동은 전국의 민병대 및 ‘애국’단체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주류 언론들은 이 무장반란을 일으킨 네바다 주 목장주 클라이븐 번디의 아들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기를 꺼려했다. 다만, 하버드 출신의 테러리즘 전문가이자 전 국토안보부 차관보였던 줄리엣 케이엠은 예외였다. 케이엠은 <CNN>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들의 조직을 지지해달라고 평화적으로 촉구하긴 해도, 그 방법이 어찌됐든 간에 그들 자신을 ‘방어’하겠다고 주장하는 중무장한 그 남성들은 그저 국내 테러리스트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들의 점거는 결국 진압됐지만, 현재의 과열된 분위기를 볼 때 SPLC가 파악했던 200여 개의 민병대 중 일부가 다른 형태의 도발행위를 충분히 벌일 수 있다. 트럼프 자신은 ‘법과 질서’를 부르짖으며 오리건 주 민병대를 넌지시 비난했지만, 뉴햄프셔 주 ‘트럼프를 지지하는 참전용사 연대’ 공동의장인 제럴드 드레무스는 민병대의 행동을 “대성공”이라고 칭했다.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민병대 대의는 “평화적이었고 헌법적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했고 이후에 드레무스는 “목장주 클라이븐 번디의 기타 추종자들과 무장남성들을 고용, 결성, 훈련 및 지원하는 음모를 꾸민 중진급 지도자이자 창시자”라는 혐의로 체포됐다.

  물론 폭력, 협박, 그리고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극우세력 등의 역할에 있어서 트럼프는 계속 불장난을 해왔다. 그는 미국 최남동부 지역 슈퍼 화요일 경선 전날 밤, 데이비드 듀크(2) 및 KKK(3)와의 관계에 대해 즉각 부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공화당 간부들조차 그를 크게 비난했다. 그리고, 실제 신(新)나치주의자이자 전통주의 노동당(Traditionalist Workers Party)의 리더인 매튜 하임바흐가 루이빌에서 개최된 트럼프 집회에서 시위자들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했다.


 미국 스타일 파시즘인가?

트럼프나치.jpg
 

 극우세력과 트럼프의 끈적끈적한 관계가 비난할 만하다 해도, 하임바흐같은 이들의 행동이 역겹다 해도, 진정한 파시즘이 시작되려면 아직 멀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의 로저 코헨은 이미 ‘트럼프의 바이마르 미국’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4) 트럼프는 ‘운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그는 자신의 극우 동지들을 진정한 운동 또는 정당에 융합시키려는 시도를 아직은 하지 않았다. 물론 미국의 총기를 소유한 극우 민병대들을 그의 SA로 결집시키려는 노력도 ‘아직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트럼프는 그런 일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국식 파시스트 운동은 독일이나 이탈리아 모델, 또는 현재 프랑스, 헝가리, 그리스 등지에서 극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정당들의 모델을 따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기억해두자. 또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 추구하는 극단적 민족주의자들 및 종교적 열성분자들로 구성된 프로토 파시스트 연대를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미국 스타일의 파시스트 운동이 될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의 앞으로 파시스트 운동의 형태를 구성하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가까스로 끌어모으고 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파시스트 운동의 적합한 메신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직은 그런 운동에 적합한 시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파시스트 운동과 그 운동에 동반되는 무장 민병대들이 연합하기 위해서는, 2007~2008년과 같은 경제 붕괴가 배경으로 깔려주어야 한다. 즉, 그러한 운동이 날개를 펼 정도로 길고 심각한 위기가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러한 경우, 버니 샌더스 또는 그와 비슷한 사회주의자가 나타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위기와 그로 인한 혼란을 해결하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있는 미국에서는, 그보다 더 강력하고 위협적인 인물, 그럼에도 트럼프의 약점인 우스꽝스러운 페르소나와 트럼프 대학교,(5) 억만장자라는 타이틀이 없는 제 3의 인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든, 대통령으로 선출되든 그는 그의 풀뿌리 연대 구성원들에게 미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의 가능성에 대해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글·밥 드레이푸스 Bob Dreyfuss

뉴욕 시 및 뉴저지주 케이프 메이(Cape May)에 기반을 둔 독립 언론인으로 정치와 안보에 대한 글을 전문적으로 쓰고 있다. <네이션>, <롤링스톤>, <아메리칸 프로스펙트(American Prospect)>, <마더존스(Mother Jones)>, <뉴 리퍼블릭(New Republic)> 및 기타 잡지 등에 폭넓게 글을 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Devil’s Game: How the United States Helped Unleash Fundamentalist Islam>등이 있다.


번역·오정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Proto-fascist, 파시즘의 원형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 프로토 파시즘은 파시즘에 영향을 미치고 그 기초를 형성한 파시즘의 원형이 되는 이데올로기를 뜻함.

(2) David Duke, 미국의 대표적 백인우월주의자.

(3) Ku Klux Klan, 미국 테네시 주의 소도시 풀라스키(Pulaski)에서 186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퇴역군인 6명이 조직해 1866년 6월 정식으로 발족한 백인우월주의 단체.

(4) “바이마르 미국에 온 걸 환영한다. 호프에서 조용히 있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항상 그렇듯, 사람들은 정치에 신물이 난다. 그들은 직설적인 이야기, 답을 원한다.”

(5) 부동산 노하우를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트럼프가 설립한 대학. 고액의 수강료만 받고 그에 상응하는 교육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현재 뉴욕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음. 2010년 결국 문을 닫았다.


*이 글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년 4월호(91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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