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르포르타주 "북한에도 인간의 욕망이 꿈틀댄다!"

2015. 0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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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신분으로 북한 입국비자를 받는 데 2년이 걸렸다. 어렵게 비자를 얻었다고 해서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일정 선택의 자유조차 없었고, 거리에서 즉석으로 시민과 의견을 나누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웠다.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는 북한 당국이 결정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감출 수는 없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 [83호] 201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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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붐비는 교차로, 사방으로 달리는 자동차들, 신경질적인 경적 소리… 파리나 밀라노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곳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한낮의 평양이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것은 3대혁명(1948~1994년 사이 김일성 집권 이후 채택된 용어로 사상‧기술‧문화 혁명을 말한다) 기념공원에서 봄 국제상품전람회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전시관에서는 북한기업과 해외기업들이 대중에게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홍콩이나 일본의 최신형 컴퓨터와 평면 TV, 스위스의 화장품, 말레이시아의 커피, 중국의 냉장고, 뉴질랜드의 모터펌프, 북한의 신발 이외에도 베트남, 러시아 등의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유럽비즈니스협회도 참가했다. 유엔의 결의(1)로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나라임을 고려할 때 초라한 성적은 아니었다.
  이날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각 홍보관 사이의 길을 뚫고 지나다니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한 서구 기업 대표의 말을 빌면, “이곳이 북한사람들의 백화점”이란다. 온 가족이 함께 나온 경우도 있었고,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다니는 여자들(이런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혹은 젊은이들이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수많은 짐 꾸러미를 들고 전시관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꼬치구이나 아이스크림을 파는 작은 가판대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장소, 군중, 부산함. 이 모든 것을 통해 일부이기는 하지만 평양시민의 소비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위안화나 유로화 등으로 결제하는 이들이 특혜 받은 계층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박람회장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북한의 최고 부유층 사람들은 아니다. 최고부유층은 더 고급스런 부티크들을 드나든다. 북한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평양에는 이런 부티크들이 대략 20여개 정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에 머무는 1주일 내내 한시도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던 두 경호원(이들은 통역자인 동시에 대단히 정치적인 경호원이었다)에게는 민간시장이나 준(準)공식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런 명품 부티크들도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서민층에 조금 더 가까운 동시에 돈이 있는 평양시민들은 대한민국산(産) 수입제품들을 몇몇 대형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이런 마트는 비록 수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카트, 바구니, 신용카드로 계산할 수 있는 계산대 등을 갖추어 일상적인 마트처럼 보였다. 특히 이번 일요일은 마트 2층에 있는 식당이 가족단위 손님들로 가득 찼고, 손님들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그렇다고 평양이 거대한 소비공간이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림없는 얘기다. 거리를 걷거나 지하철을 타고 다녀보면 궁색한 옷차림에 때로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거리에서 마주친 대다수 사람들에게서는 경제적 풍족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도시 어디를 가나 젊은 군인들이(그들에게서는 어떤 공격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내 안내원 가운데 한 명은 “군대의 소명은 국가를 방어하는 것만이 아니다. 군대는 건설작업에도 참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군인의 노동력을 이용하면 큰 돈이 들어가지 않으니 대단히 실용적인 것은 맞다.
 
김정은의 강령 “평양의 빠른 변화”
 
  정치적으로 북한의 체제는 지도자들의 확신에 기반해 구축되어 있다. 비록 그 확신이라는 것이 착각을 일으키는 것일망정, 절대적인 혜안을 지녀 무한한 숭배의 대상으로 신격화된 지도자들이 국민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지도자들의 시조는 점령자 일본과 미국을 차례로 내쫓고 ‘영원한 영도자’가 된 김일성이었다. 그의 뒤를 이어 아들 김정일이 군대를 강화하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 32세의 김정은은 북한을 현대화할 야심으로 가득 차 있다. 기념관, 수영장, 학교 등의 공공건물에 이 세 명의 지도자 중 한 명이라도 그 사진이 걸려 있지 않은 건물이 없고, 사람들은 교회에 들어갈 때 성호를 긋듯이 건물 앞에서 허리를 굽힌다. 북한의 법체계에 따르면, 위협적인 제국주의와 수탈적인 자본주의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정치사회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누구나 사상 재교육을 받거나(외부에서는 이를 두고 ‘세뇌 교육’이라고 조롱한다) 수용소로 보내지거나 그도 아니면 군법회의를 거쳐 총살된다.
  아직까지는 물리적 생활환경이 개선되고 수도가 변화해야 한다는 문제가 남아있다. 길을 물어보러 우리 쪽으로 온 베트남 관광객은 “10년 전에는 모든 것이 회색이었고, 자동차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도처에서 온갖 색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옷차림(2)과 건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름값 하는 아시아 도시들처럼 평양에도 삼사십층 높이의 건물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더러는 고전적인 건축물이고 더러는 둥근 형태에 푸른색, 또 다른 것들은 초록색과 황갈색 붓 모양이다. 여기에 1950년대에 대량으로 지어진 소련스타일의 아주 단순한 형태의 건물들이 곁들여져 있다.
  평양을 관통하는 대동강변 곳곳에서는 김책대학교(북한 인민군 총사령관으로서 6·25 중에 사망한 김책의 이름을 딴 첨단과학기술대학교) 확장공사를 비롯해 관광활성화를 위해 제방을 정비하는 등의 공사가 한창이다. 지도자 김정은의 지령에 따른 ‘평양의 빠른 변화’, 즉 수도현대화를 향한 확실한 의지가 느껴진다. <평양타임스>(2015년 5월 16일)는 “우리가 평양에 대해 기대하는 수준 높은 문화를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필요성은 평양의 이미지 변화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엘리트 양성에도 해당된다. 김일성대학교 도서관을 방문하고 이어서 김책대학교를 방문해 컴퓨터들로 가득 찬 강의실들을 볼 수 있었다. 모든 컴퓨터들은 인트라넷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안내해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상당히 속도가 빠른 고성능 컴퓨터들이라고 했다. 석사과정 이상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전 세계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다. 물론 제약이 따른다. 이에 대해, 김책에 대한 존경심을 내보인 젊은 여성안내원은 “인터넷에는 대단히 안 좋은 것이 있기 때문” 이라고 했다. 학생들과 교수들이 방문하는 사이트는 꼼꼼히 목록이 작성된다. 통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알기 어렵다. 반면에 외부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이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는 학생은 한 명도 없는 것이 확실했다.
  이 호화로운 대학교의 교수들은 대단히 훌륭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대동강변에 건설 중인 건물이 그것을 입증한다. 번화한 거리 쪽을 향한 건물에 교수들은 무료로 거주할 수 있다. 1990년대에 지은 자신의 아파트 문을 열어준 한 여성의 말에 따르면, 교수들에게 무료 주거시설을 제공하는 것은 북한의 오래된 전통이라고 했다. 우리의 안내를 담당한 안내원 덕분에 방문할 수 있었던 부부의 집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편은 김일성대학교 교수이고, 시아버지는 ‘영원한 지도자’와 함께 일한 건축가라고 했다. 대동강의 멋진 풍경이 들어오는 방 7개, 욕실 2개의 널찍한 아파트는 잘 꾸며져 있었다. 안주인은 그 가구들이 ‘위대한 김정일 지도자’가 하사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40층에 달하는 쌍둥이 빌딩에 살고 있는 그들의 모든 이웃들도 마찬가지로 가구를 하사받았다고 했다. 그들이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고 획일성이 규칙이 된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전혀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형형색색의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다음 세대들도 그들과 마찬가지일까?
  현재에 간부급 계층이거나 미래에 간부가 될 계층의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특권을 누리고 있지만, 북한의 가장 순수한 전통이라 할 수 있는 공산주의에 대한 기본 소양교육도 등한시되지 않고 있었다. 아마 학생들은 ‘김씨 왕조’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그들이 베풀어준 은혜, 그리고 미제국주의가 저지른 만행들에 관해 배울 것이다. 하지만 읽고 쓰기도 배운다. 북한에 대해 전혀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미중앙정보국(CIA) 북한 연감의 통계에 따르면 북한 성인남녀의 문맹 퇴치율은 99%다.(3) 개발도상국으로서는 놀라운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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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서는 농부들이 여전히 맨손으로 작업을 한다
 
  스케이트 링크, 공연장, 승마센터, 일요일이면 북한 사람들이 10여 명씩 무리지어 찾아와 노는 거대한 미끄럼틀을 갖춘 워터파크, 범퍼카와 롤러코스터가 들어 선 놀이공원, 비디오 게임 등이 등장했다. 그러니 도시는 즐겁다. 하지만 도시외곽지역, 특히 시골의 상황은 다르다. 어떤 통계자료도 접할 수 없었고, 사람을 만나볼 수도 없었다. 서부에서 동부로 횡단할 때, 그러니까 평양에서 원산으로 가는 길에 받은 느낌만이 있다. 160킬로미터를 가는 데 자동차로 세 시간 가까이 걸렸다. 허리는 아팠지만 눈은 즐거웠다. 시멘트 판으로 건설된 도로는 심한 기온 차(여름에는 30도가 넘고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간다) 때문에 군데군데 접합 상태가 좋지 않고 움푹 팬 곳들이 많아서 빨리 달릴 수 없었다. 그 덕분에 논이며 밭, 마을들을 감상할 여유가 있었다.
  북한은 한창 모내기와 밭갈이 철이었다. 넓은 농지에서 농민들은 대부분 손으로, 혹은 삽이나 곡괭이 같은 농기구를 사용해 농사를 짓고 있었다. 가끔 말라빠진 소가 쟁기를 끌고 있었고 정말 예외적으로 작은 트랙터를 사용하는 것도 보았는데, 우리가 이동하는 세 시간 동안 고작 두세 번 정도 볼 수 있었다. 들판 가운데 일정한 간격으로 여러 색깔의 점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농사일을 돕는 사람들이었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은 10~15일 정도 학교 수업을 중단하고 모내기를 할 때나 밀‧옥수수 등의 파종을 할 때 농사일을 돕는다. 파종 때나 모내기철, 그리고 추수철에 의무적으로 하는 일이다. 휘날리는 붉은 깃발들도 볼 수 있었는데, 10여 명의 군인들 역시 농사일을 돕고 있었다. 어떤 군인들은 1년 내내 농사를 돕기도 한다.
  2012년 5월부터 농민들은 얼마 되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땅을 가질 수 있게 됐다. 4, 5명이 조를 짜서 직접 논밭의 일부를 관리하고 거기서 거둬들인 농작물을 판매할 수 있다. 비료 사용과 더불어 미약하나마 영농법 개선이 이루어졌고, 이러한 개혁을 통해 수확이 증대됐다.(4)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정부기구(5)와 세계식량계획의 발표에 따르면 기근은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2013년 3월에 발표된 UN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주민 10명 중 약 3명(27.9%)이 만성적인 영양부족을 겪고 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 차가 어떤 마을 입구에서 고장이 나면서 도로 옆으로 빠져 버렸다. 평양까지는 40킬로미터 가량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우리를 데리러 오기 전까지, 다리를 건너 마을의 첫 번째 집까지 걸어갈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이런 생각을 내비치자 내 안내원은 나의 농촌 산책을 막기 위해(다른 모든 산책도 마찬가지였지만) 가능한 모든 이유와 핑계를 댔다.
  내 안내원들과 그들의 동료들은 ‘금지’라는 단어가 북한의 이미지를 대단히 실추시킨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순진하게도 안전문제가 있다느니, 이 장소에는 그리 볼 것이 없다느니, 농부들이 외국인을 보고 적대감을 표현할 수 있다느니 식의 ‘설명’을 하려고 애썼다. 나의 안내원들은 둔한 공산당 중견인사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의 요구에 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가능한 최대로 유연하게 명령을 수행했다. 곧 그들은 아무것도 금지되어 있지 않지만 프로그램 안에 포함되지 않은 모든 것은 불법이라는 금과옥조를 어기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도로에서 보이는 마을의 집들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 참 역설적인 일이었다. 심지어 최근에 페인트칠을 한 것으로 보이는 대단히 사치스러워 보이는 건물도 있었다. 공공 집회장일까? 그날 오후 다소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북한 주민들은 몹시 지쳐 보였고, 행색 또한 가난해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수도 주변이라 한들 농촌이 부유하다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내 안내원들은 평양을 떠날 때 내게 근사한 마식령 스키장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해발 1528미터의 마식령 스키장은 군인들의 힘으로 건설되어 2013년 12월에 개장했다. 스키장은 숨이 막힐 정도로 멋진 경관에다 서구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시설을 갖췄다. 전체 스키장 부지는 1,400헥타르에 달했고 슬로프가 10개 있었다. 리프트는 3개 라인 이외에 곧 1라인이 추가될 예정이었다. 정상에는 카페레스토랑, 아래쪽에는 ‘슈퍼 럭셔리’ 호텔이 들어서 있었다. 25미터 레인의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는 이 호텔의 92개 객실(그중 10개는 스위트룸)에는 인터넷까지 연결되어 있다. 이 고품격 스키장에 대해 이수범 총지배인은 ‘미국이 서구기업들의 협력을 방해했기 때문에 순전히 우리 힘으로 지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스키장에 들렀던 날 독일인과 중국인 두 명의 해외기술자가 엘리베이터 보수를 위해 와 있었다.
이 호텔의 1박 요금은 100~220달러(91~20유로)로 서비스에 비하면 대단히 싼 편이지만,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이 접근하기에는 당연히 매우 비싼 가격이다. 북한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1달에 135달러 남짓이다. 스키 장비 대여와 리프트 이용권으로 28달러가 들어가니 북한주민들에게는 스키를 타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 완전한 평등과 계급 없는 사회를 주장하는 나라라고 하기에는 대단히 비민주적인 일이다. 그러나 명분은 좋다. 다른 해외 고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고 특히 아시아와 러시아 등지의 해외 고객들을 유치할 수 있는 것이다.
  2014년 5월 30일 김정은이 주도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새로운 경제정책이 정해졌다. 국가의 규제를 조금이나마 완화하고, 반(半)국영기업의 기능을 개선해 상점에 상품을 내놓도록 하며, 시장과 해외기업체에 개방된 경제특구(SEZ)를 확대하는 것이다. 북한은 ‘5·30조치’로 알려진 이 결정이 실행될 수 있도록 애쓰는 중이다. 북한의 대외경제부가 설립한 국가경제개발위원회의 리철석 부위원장은 “우리들의 결의는 확고하다”고 다짐한다. 우리가 만난 모든 정부관계자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우리가 있는 호텔로 찾아왔다.
  리 부위원장은 우리를 설득하려고 애쓰면서도 상투적인 정치구호는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의 경험과 시행착오, 그리고 해외에서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었다. 우리는 투자자들이 최고의 조건을 누릴 수 있는 환경, 그들이 제약받지 않고 일하면서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한다.” 북한이 원하는 투자 분야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관광, 전자제품, 기계, 농산물가공업이 포함되어 있다. 순이익과 관련된 각종 세금은 14%를 넘지 않을 것이고 중요 분야에서는 10% 선(지금까지는 25%)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유용하고 정확한 정보도 주었다.
리 부위원장의 말이 이어졌다. “이와 같은 경제특구는 이번에 처음 창설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경험이 풍부한 인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경제특구 관리를 이해하고 배우기 위한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한 매니지먼트와 기업 문화를 배우기 위해 작년에 김일성대학에 경제학과를 개설했다.” 해외 파트너들과의 회의와 세미나, 해외연수가 늘어나고 있다. 2013년 1월에는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북한을 방문해 화제가 됐다.
  

중국과 북한의 통로 입구 편에 펼쳐진 거대한 황무지
 
  리 부위원장은 아직 승부가 끝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북한이 초기에 경험한 어려움도 있지만 여기에 “북한에 대한 대단히 나쁜 이미지”가 덧붙여지고 있다면서 그는 미국 탓을 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지도자의 시끌벅적한 발언이나 대화 거부(지난 5월 21일 북한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방북을 거부했다), 2014년 2월 유엔인권위원회의 보고서에 드러난 명백한 인권탄압 등은 물론 언급하지 않았다.
  서구 측의 대응, 즉 경제봉쇄(embargo)는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금수조치는 반대로 보호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국민들이 협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찬가지로, 서구 측은 역사적 현실과 북한이 남한과 대치하면서 겪은 융단폭격의 트라우마(6)를 알고 있다면, 매년 국경 근처에서 치르는 미군과 한국군(2만 7천 명)의 한미연합 해안양륙훈련이 무모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다. 이라크와 이란의 운명을 비교해보면서 김정은과 그의 측근들은 이란이 핵무기 보유라는 위협을 가함으로써 군사적 개입을 피해갈 수 있었다고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핵 보유만이 북한을 위한 종합보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평양에 주재하고 있는 한 서구외교관은 “남한만큼이나 북한에도 도발이 있다”면서 “미국은 잘못된 쪽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평한다. 그는 1998년~2007년 사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하던 ‘햇볕 정책’의 시기, 남북 화해의 시기를 그리워한다.
  현재 북한에는 중국, 남한, 이집트 투자자들만이 들어와 있다. 중국 투자자들은 수치상으로는 가장 많지만 가장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 남한 투자자들은 휴전선 인근의 개성공단에 밀집해 있고, 이집트 투자자는 오라스콤 통신회사다. 이렇게 투자자 수가 적은 것은 경제봉쇄의 영향도 있지만 북한 지도층의 관료주의와 망설임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탓에 중국 단둥 맞은편에서 국경을 접한 압록강 연안의 신의주경제특구 프로젝트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중국이 건설하고 1년 전쯤에 완공된 현수교의 북한 쪽 입구 편에는 거대한 황무지가 펼쳐져 있을 뿐이다.
  평양에서 중국 단둥으로 가는 9시간의 기차여정 동안 생각과는 달리 내 수행원들은 나를 홀로 내버려 두었다. 사실 큰 위험은 없었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한국어 이외의 다른 외국어를 하지 못하는 내국인들이거나, 낯선 사람들과는 거의 말을 나누지 않는 과묵한 사람들로 보였다. 신의주 국경초소에 두 시간 정차해 있는 동안, 세련되고 수다스러운 상하이의 사업가 한 명이 말을 걸어왔을 뿐이다. 그는 대화 도중에 자신의 직업이 '노동력수출가'라는 모호한 직업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중국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위해 계약 협상을 하는데, “당국과 직접 협상하지 않고 담당 회사와 협상”한다고 했다. 북한노동자들은 우리 옆 차량에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임금은 어떤 식으로 받을까? 더 이상 알 수는 없었다. 중국 사업가는 1등석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단둥에 도착하자, 지나쳐온 북한 농촌의 모습, 심지어 신의주에서 본 건물들과 대조되는 단둥의 풍경에 충격을 받았다. 이 항구도시는 작은 홍콩의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북한 사회의 비밀스러운 모습도 느껴졌다. 단둥에 압록강 양쪽의 상인들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역 앞에서 거대한 마오쩌둥 동상이 여행객들을 맞았다. 미래를 향해 손가락을 치켜든 마오쩌둥 동상은 웅장했고 그 주변에는 건물들이 버섯처럼 둘러 서 있었다. 단둥 역시 최근 몇 년간 중국을 휩쓸었던 부동산 열기를 비켜가지 못했다. 압록강변에 화려하게 들어서 있는 호화주거지역 전체는 텅텅 비어 보였고, 현수교만큼이나 쓸모없어 보였다. 활기로 넘쳐나는 동쪽의 신(新)단둥항은 북한하고만 교역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단둥에는 여전히 온갖 종류의 중개인이 평양으로부터 모여든다.
  평양 외곽지역에 작은 미니버스 조립공장을 가지고 있는 왕 위엔강 사장도 이런 사람 중 하나다. 2010년에 그는 북한 회사와 합작투자를 체결하고 5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전통에 따라 차(茶)를 준비하면서 설명했다. “교통이 발전하면 시장이 좋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북한노동자들은 규율을 잘 따르고 각자 자리를 지킨다. 원하는 대로 공장을 옮겨 다니는 중국인 노동자들 같지 않다. 그들은 한 달에 30유로 정도에 해당하는 월급을 받고 7유로의 보험료를 추가로 받는다.” 이들은 하루 8시간, 주 6일을 근무하지만 황하이 공장의 중국인 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10분의 1 수준을 받는다. 황하이 공장은 그가 북한의 공장에 조달하는 부품을 사들이는 단둥의 공장들 중 하나다. 왕 사장은 북한노동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식품(쌀, 식용유 등)을 배급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의 이야기로 미루어보면, “김정은이 높이 평가한” 이 협업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순항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수익성 좋은 사업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현재 그는 사업 확대를 함께 할 파트너를 구하고 있는 중이지만 지원자가 별로 없다고 한다. 왕사장은 북한에 대한 제재 때문에 북한과 함께 일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외국의 회사들을 위한 중개사업자 역할도 하고 있다.
  그의 사무실 바로 맞은편에는 여행사들이 줄지어 서 있다. 양쪽을 왕복하는 여행 업무를 담당하는 여행사를 통하면 손쉽게 비자를 얻을 수가 있다. 단둥의 목 좋은 곳에 점포를 둔 회사들은 수출입관련 회사들이다. 여기서는 각양각색의 사업가들을 만날 수 있다. 시내에 자리 잡은 북한정부관계자들은 그들의 작은 사회, 특히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젊은 북한여성들을 감시하며 모든 것을 거래한다. 북한정부관계자와 계약을 맺는 중국계 한국인들은 한국어를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소규모 중국인 자영업자들은 전도유망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출입회사 여사장은 손가락으로 북한 쪽을 가리키며 “저쪽 사람들은 예민해서 쉽사리 화를 낸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 쪽의 상대는 최근 4,5년 간 많이 늘어났다고 했다. 그는 20년 전부터 시작한 사업에서 모든 것이 변했다고 평가한다. “예전에는 쉽지 않았지만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한 명뿐이었다. 때로는 그 사람이 사라질망정(사망 또는 북한 당국으로부터의 실종) 믿을 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훨씬 복잡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물건이 배송된 이후에 지급을 거부하기도 하고 턱도 없는 지급 기한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일이 점점 더 자주 일어난다.” 그는 미지급액이 2천만 유로에 이른다고 주장하면서, 돈이 사업가들 같은 정치지도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즉 대규모로 부패했다는 것이다. 물론 확인할 방법은 없다.
 
압록강 연안에서 진행되는 온갖 암거래
 
  확실한 것은 모든 차원에서 암거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급행비자를 얻기 위해 여행사들은 세관과 경찰에 돈을 지불한다. 압록강이 좁아지는 지점에서 북한 군인들과 농민들은 작은 일을 해 일상생활을 개선시키고 있다. 단둥 도심에서 15km 지점에 있는 빈지앙동루(강변도로)에는 두세 척의 배, 시멘트로 지은 작은 부두, 가판대 몇 개로 즉석에서 항구가 형성됐다. 중국인들이나 관광객들은 100위안을 내면 북한 땅을 밟을 수가 있다. 그곳에서는 군인들이 주변 농가에서 나온 신선한 달걀(1개당 2위안), 담배, 술, 평양에서 보는 것과 같은 공식기념품(원화, 우표 등)을 판매한다. 부두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흥분의 느낌은 덜하다. 상인들은 총 판매액의 1%를 물건을 거래하는 북한 군인들과 암거래를 눈감아주는 중국 군인들에게 준다. 한 판매원은 “공평하게” 나눠준다고 덧붙였다.
모든 사람들이 눈을 감아준다. 시진핑 주석의 부패와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부패가 국민의 일상이 되어버린 중국에서 이런 관행은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일반 군인들과 그들 상관들이 벌이는 이런 게임 덕에 북한 군대는 조금 더 잘 살아갈 수 있고 일종의 배출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평양에서 금기라고 할 수 있는 돈이 일상생활에 끼어들고 있다는 증거가 하나 더 있다. 러시아 출신으로 남한의 북한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상인 계급’이 형성되고 있는 중이라고 평가한다. “이 계급은 점점 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주장할 것이며, 진부한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장이 정부의 주장과 당에서 오래전부터 특권을 누려온 사람들이 하는 주장과 반드시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7) 정치적으로 경직된 가운데서도 경제적 변화가 한창인 북한의 모습은 서구에 흔히 알려진 희화화한 모습과 닮지 않았다. 북한 당국이 만들어내려고 애쓰는 계급 없는 사회의 비전과는 더더욱 닮지 않았다.


 

(1) 한국전쟁(1950-1953) 이후 미국의 북한 제재는 완벽하다. 2006년, 2009년, 2013년 세 차례의 북한 핵실험 후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만장일치로 경제 제재를 결정했고, 매번 그 강도가 높아졌다.

(2) 필립 퐁스, ‘변혁 이끄는 북한 여성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년 3월호 참조.

(3) 2014년 추정치. <The World Factbook>, CIA, 워싱턴DC, www.cia.gov

(4) 로맹 미엘카렉, ‘북한은 기아와의 전쟁 중’, Radio France International, 2013년 4월 16일 참조.

(5) 상당수의 비정부기구들이 북한에서 활동하고 있고, 흔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중에는 식수 관련 활동을 하는 ‘인도주의 세대 트라이앵글(Triangle génération hamanitaire)’, ‘1차 응급의료지원(Piremière urgence sur l’aide médicale)’, ‘세계 농인 협회(Fédération mondiale des sourds)’ 등의 단체가 있다.

(6) 브루스 큐빙, ‘북한에서의 포화의 기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4년 12월호 참조.

(7) 안드레이 란코프, ‘북한에 관해 여전히 요점을 놓치고 있는 뉴스 미디어’, NK뉴스, 서울, 2015년 4월 7일.

 

 글•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선임기자.  <뤼마니테>편집장 출신. 한국등 동아시아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2013년  7월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1면에 '삼성, 공포의  제국'이라는 르포기사를 게재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번역·김계영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학사>(2006), <르몽드 세계사3>(2013), <키는 권력이다>(2008) 등이 있다.


 * 이 글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서 볼 수 있다.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4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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