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차이나의 인더스트리 4.0 2_2

강태호 2016.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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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기획> 수퍼 차이나의 인더스트리 4.0


1부. 수퍼 차이나의 수퍼기업들


 1_1. 발문:심층 기획을 시작하며
        모방과 추격을 넘어 혁신으로


 1_2. 세계를 사들이기 시작하다
       중국기업의 글로벌화


   1_3. 메이드인에서 메이드 바이 크리에이티드 차이나로
        제조 2025과 제조강국



2부 후발부문-추격과 도전 


   2_1.  반도체-칭화유니 그룹과 시진핑의 반도체 굴기
        퀼컴 인텔 등 중국과 협력 나서

   2_2.  백색 가전- 하이얼 메이디의 글로벌화 
         하이얼- GE, 메이디-도시바 인수
 

   2_3. 스마트폰- 파죽지세의 시장장악과 모바일 생태계
         화웨이 레노버 샤오미 애플을 능가
   
3부  선도부문-경쟁과 추


   3_1. 전기차-신에너지차 미국 추월 쾌속 질주
         바야디(BYD) 등 IT 기업의 성공 신화 재현
  

    3_2, 로봇-제조 대국 중국의 야망
            로봇은 이미 세계의 중심
  

    3_3. 드론-다장커지(DJI)의 팬텀 혁신
          미국의 뒤를 바짝 뒤쫓는 드론


 중국 가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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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라스베거스 소비자가전전시회(CES)의 하이얼 부스


   매년 미국과 유럽에서는 1월 2월 9월 세계 3대 ICT(정보통신기술)·전자제품 전시회가 열린다. 라스베가스 CES(소비자 가전쇼), 바르셀로나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 베를린 IFA(국제가전박람회)다. 중국 가전의 힘은 수십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들 3대 전시회 모두를 처음으로 중국으로 끌어들였다.  앞에는 ‘아시아’ , ‘차이나’ 또는 ‘상하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정례화하기로 했다. 
  미국가전협회(CEA)가 주최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제품 박람회 CES는 지난해 5월 상하이에서 ‘CES 아시아’로 또 다른 박람회를 열었다. 전 세계 220여개국 800여 통신 사업자모임인 세계 이동통신사업자 협회(GSMA)도 그 뒤를 따랐다. 2015년 7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상하이’를 열었다. 1987년부터 시작된 모바일월드콩그레스는 주요 통신사 및 휴대전화 제조사들도 총집결해 전략 스마트폰을 처음 공개하는 경우가 많아서 '스마트폰 쇼'라는 별명이 붙어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IFA(Internationale Funk Ausstellung·국제가전박람회)'가 ‘아시아판 IFA’를 표방하며 만든 제1회 ‘CE 차이나’가 2016년 4월20일 중국 선전 컨벤션 & 전시센터에서 개막했다. 올해로 56회째를 맞는 IFA는 메세베를린(베를린박람회)과 독일 가전통신협회(GFU) 주최로 매년 9월 베를린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행사는 IFA의 주최쪽인 독일 메세베를린과 중국 선전시가 협력해 만든 행사다. 그리고 다시 2016년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간은 상하이에서 제2회 CES아시아가 열렸다.
  옌스 하이데커 독일 메세베를린 부사장(IFA 사업 총괄)은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며 성장하는 시장”이라며 “중국의 중산층이 급속히 커지면서 다양한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CE 차이나’를 연 이유다. 그는 2016년 4월19일 홍콩 하얏트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하이얼(海爾·Haier) 메이디(美的 Midea) 하이센스 등 중국 가전업체가 글로벌 노하우만 좀 더 쌓으면 세계 가전시장을 주도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기업들은 그동안 내수 시장에만 집중해 성장하면서 글로벌화에 약했다”며 “글로벌 마케팅 능력을 갖추는 게 가장 큰 과제”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제 중국 가전기업들이 미국 일본의 전통 가전기업을 사들임으로써 글로벌화에 나서고 있다. 최근 세계 가전산업의 판도는 전통 강호인 일본이 크게 후퇴하고 있다. 국내 시장을 이미 장악한 중국 가전기업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삼성, LG 등 한국의 가전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2015년에 이어 2016년은 중국 가전기업의 글로벌화 원년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중국시장은 크다 그러나 그 규모보다 변화의 속도가 더 무섭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른바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콘의 백색가전의 경우 시장이 성숙하면서 중국 업체들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중국 가전업계에는 유달리 시장패권을 쥐기 위한 합종연횡이 다양했다. 업계의 경계를 넘어선 연합도 있었고, ‘적과의 동침형’ 제휴도 나타났다. 이처럼 국내시장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힘을 기른 이들 가전 기업들은 이제 미국 일본 기업들을 사냥하며 브랜드 마케팅을 통한 시장 장악과 특허 등 기술적 장벽을 넘어 글로벌 무대의 강자로 등장하고 있다. 가전에서도 중국 기업을 단지 정부의 보호와 지원을 통해 급성장한, 저가의 품질 낮은 제품만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치부할 수 있던 시기는 눈깜짝할 새에 지났다. 특히 인터넷 플러스 시대에 부응해 하이얼의 최고경영자 장루이민(张瑞敏)이 추구하고 있는 ‘플랫폼 기업’으로의 혁신은 놀랍다.


하이얼 100년 역사 GE 가전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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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월 중국 최대 가전제품 제조업체 칭다오 하이얼(靑島海爾·Haier)이 100년 역사를 가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 부문을 54억 달러에 인수했다. 하이얼의 가전 부문 인수는  GE의 시장점유율이 15% 안팎이라는 점에서 미국 시장점유율이 고작 1%대인 하이얼의 지위를 단숨에 3위권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물론 이는 앞서 반도체에서의 칭화유니의 미국 기업인수 시도와 마찬가지로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각고의 시행착오 끝에 이뤄진 집념의 결과다. 2004년 중국 최대 가전 기업으로 성장한 하이얼은 해외 시장에서도 시장을 선도하는 최고의 가전 제품 브랜드로 성장하는 목표를 수립하였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이얼은 2005년 월풀, GE와 함께 미국의 3대 가전회사의 하나인 메이택(Maytag)을 인수하기 위해 사모펀드 두 곳과 손을 잡았다. 하이얼은 입찰가로 12.8억 달러를 제시했지만 결과적으로 인수전은 2006년 3월 미 최대 가전기업인 월풀의 승리로 돌아갔다. 당시 미 법무부는 월풀의 메이텍 인수를 최종 승인해 월풀이 미 주요 가전시장의 절반을 점유하는 최대 가전업체로 부상하게 됐다. 법무부는 그동안 반독점 조사를 거쳐 양사의 합병이 공정 경쟁을 저해할지 여부를 검토했으나 “합병에 따른 대규모 비용 감축과 다른 효과들을 고려할 때 소비자들에게 결코 해롭지 않다는 결정을 하게 됐다”며 월풀의 손을 들어젔다. 메이택은 2005년 8월 주당 21달러 총 16억8000만달러의 인수 가격을 제시한 월풀의 인수 의사를 받아들였다. 시장 분석가들은 메이텍과 월풀이 합병할 경우 미국 주요 가전시장의 점유율이 48%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2008년 미국의 GE가 가전부문 매각을 시도하자 하이얼은 다시 나섰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촉발된 금융 위기로 인해 GE가 매각 작업을 취소하면서 두 번째 기회도 무산됐다. 따라서 이번 GE 인수는 세 번째 시도 끝에 얻은 성공이다. 그것도 스웨덴의 가전 기업 일렉트로룩스(Electrolux)가 미 정부의 독점금지 규제에 부딪쳐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22014년 12월 GE와 일렉트로룩스는 33억 달러에 GE 가전 부문 매각 인수에 합의했다. 그러나 미 법무부는 월풀-메이택과는 달리 해당 거래로 인해 시장 경쟁이 약화되고 결국 가전 제품의 가격 상승을 유도할 것이라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GE는 2015년 12월 일렉트로룩스와의 거래 협상을 중단하고 신규 인수자를 찾는다고 발표하였다. 하이얼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GE가 새로운 매각계획을 발표한지 한 달이 채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삼성 LG 메이디 등 경쟁자들을 뿌리치고  일렉트로룩스에 비해 무려 21억달러나 높은 가격인 54억달러에 GE 가전부문을 인수하는 데 합의한 것이다.
  토머스 에디슨으로부터 비롯된 GE는 미국 가전 제품의 상징과도 같은 브랜드다. 2004년 레노버가 PC를 상징해 온 IBM PC 부문을 인수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전통적인 전자제품 등 IT제조 분야에서는 일본마저도 중국에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다. 하이얼은 4년 전인 2012년 파나소닉이 산요(三洋)전기로부터 넘겨받은 백색 가전 사업을 인수한 바 있다. 량하이산 하이얼 회장은 산요전기의 공냉(air-cooling) 기술과 제조공법 등 연구·개발 자원 때문에 인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이얼은 이를 계기로 국내 경쟁사보다 먼저 양문형냉장고와 구조가 복잡한 프렌치도어냉장고를 출시할 수 있었다. (장얼츠 [집중기획] 중국 ‘가전굴기’ 삼성·LG 위협한다 <이코노미 인사이트> 72호 2016년 4월)
  GE는 미국에서 ‘메이드 인 아메리카’로 이미 브랜드 이미지를 단단하게 구축해 놓은 글로벌기업으로, 충성고객도 다수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하이얼의 GE 가전 인수는 미국 시장점유율 확대는 물론 아태지역, 아프리카, 중동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회사 스타티스타에 따르면, 북미 시장 1위와 2위인 월풀과 일렉트로룩스의 점유율은 각각 30%, 20%대 였으며, 삼성전자의 북미 시장 점유율은 2010년 6.7%에서 2014년 3월엔 10.7%까지 늘어난 것으로 돼 있다. 그에 반해 하이얼은 2000년 대학생 기숙사용 미니냉장고와 미니 와인셀러로 처음 미국시장에 진출했으나, 미국 진출 15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낮은 인지도와 마케팅 능력의 부재 등으로 시장점유율은 2006년 0.7%, 2015년 말 1.1%로 미미했다. 유로모니터(Euromonitor)는 하이얼이 미국 진출 15년 동안 줄곧 낮은 점유율의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 이번 GE 가전부문 인수의 주된 동기가 된 것으로 분석했다. 하이얼은 첨단 스마트 가전제품을 출시했지만, 저가 제품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미국 소비자들의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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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는 경쟁력을 잃고 있는 가전 부문을 매각한 대신 이 매각자금을 새로운 사업영역에 투자했다. 2015년 완료된 95억 달러 규모의 프랑스 알스톰(Alstom) 전력사업 인수 건은 GE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인수 거래 중 하나였다. 가전 부문 매각과 알스톰의 전력 부문 인수는 사업의 구조조정 포트폴리오의 변화 및 새로운 사업으로의 확장을 위한 것이었다. GE는 1994년 이탈리아의 터빈 및 컴프레서 제조업체인 누오보 피그노네(Nuovo Pignone) 인수를 통한 정유 및 가스 사업 진출, 2007년 116억 달러 규모의 GE Plastics 매각,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금융 관계사들의 분사 등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추진해왔다.
  LG 경제연구원 이종우 박종석 연구위원에 따르면 하이얼은 글로벌 시장 확대 전략을 수립하고 ‘Three Thirds’ 계획을 발표하였다. 핵심은 중국에서 생산/판매하는 제품, 중국에서 생산하고 해외 시장에서 판매하는 제품, 해외에서 생산/판매하는 제품의 매출 규모를 각각 3분의 1 수준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이종우 박종석 LG 경제연구원, ‘성공하는 M&A는 무엇이 다른가’ LGERI 리포트 2016년3월16일)  하이얼의 장루이민 회장이 세운 전략은 ‘저우추취(走出去), 저우진취(走進去) 저우상취(走上去)’였다 ‘먼저 밖으로 나아가고, 나가서 안으로 들오며, 더 높이 나아간다’는 뜻이다.
   이 하이얼의 글로벌 선도 가전 기업을 지향하는 전략에 따르면 이번 인수는 △미국 시장에서 중요한 거점을 확보하였고 (월풀 다음으로 GE 가전부문이 2위), △프리미엄 글로벌 브랜드를 획득하였으며, △미국 내 주요 유통망을 운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또 이 거래를 통해 협업할 수 있는 영역은 가전 사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두 회사는 IT, 헬스케어 등과 같은 분야에서 글로벌 협업 혹은 공동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하이얼은 GE의 가전 부문에 매력을 느껴 M&A를 추진했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산업 기술 분야에서 명망 있는 GE와 함께 사업 협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에도 큰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GE의 관점에서도 일렉트로룩스와의 인수 협의에 비해 20억 달러 정도 더 높은 가격에 가전부문을 매각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최대 기업 중 하나인 하이얼과 함께 협력하며 중국 시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거래였다.
 사실 중국 가전기업의 해외 진출은 하이얼에 앞서서 텔레비전을 주력제품으로 내건 가전기업 TCL이 가장 먼저 추진했었다. 리둥성(李东生) TCL 회장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흐름을 타고 2004년 프랑스 톰슨(THOMSON)사의 컬러 TV 사업을 인수했다. 이 인수합병은 중국 기업이 처음으로 주요 산업영역에서 경제 규모 세계 1위를 차지, 중국의 기업 굴기를 보여주는 이정표로 평가받았다. 그 3개월 뒤 TCL은 알카텔(Alcatel)과 함께 휴대폰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이 두 개의 중대한 인수합병 건을 통해 TCL의 국제화 전략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이는 쓰라린 실패로 끝났다. TCL은 톰슨 인수에서 다국적기업의 통합조정이라는 도전에 직면했다. 자금과 기술, 인재 보유와 유럽 법률, 문화와 풍속 및 시장 이해 등 모든 부문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해외사업은 그 해 전면적인 손실을 발생시켰으며, 국내사업마저도 곤경에 빠졌다. TCL의 주식은 2005년 급락했고, 1년 후엔 특별관리 종목으로 분류되었다. 리둥성은 심지어 ‘최악의 중국 상장기업 CEO’로 선정되기도 했다. (중국 <经济观察报> 2013년 12월 30일 연말특집 ‘四世同堂’의 일부. ‘중국의 기업가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무엇을 꿈꾸고 있나’ LG <瞭望 중국> China Insight 2014년 1월 50호에 번역돼 실림)


 위탁생산업체 메이디의 도시바 가전부문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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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가전시장은 1990년대만 해도 일본이 주도했지만, 2000년대 이후 한국의 뒤를 이어 중국이 부상했으며, 특히 백색가전은 일본 전자업체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업종전환을 하면서 중국이 주도하는 구도로 넘어가고 있다. 
  또 다른 가전업체 메이디(美的)가 2016년 3월 지난 20여년동안 합작파트너였던 일본 도시바의 백색 가전사업을 인수한 것은 이런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과거 도시바는 메이디에 기술을 이전해주고, 메이디를 위탁생산업체로 활용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메이디에 인수되는 처지가 됐다. 메이디는 다소 생소하지만 하이얼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가전 종합 IT회사다. 1968년 중국 광둥(廣東)성에서 설립된 메이디는 전세계적으로 200여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9개 사업부문에 직원이 10만명이다. 메이디는 2015년 210억달러(약 24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중국의 <신화통신> <후롄(互聯)망> 등은 메이디가 2016년 3월30일 도시바의 백색가전사업 자회사인 도시바 라이프스타일 제품 & 서비스(TLSC)의 지분 81.1%를 537억엔(약 5415억원, 5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나머지 지분 19.9%는 도시바가 보유한다. 종업원의 고용은 메이디가 승계하며 생산거점도 그대로 유지한다.  TLSC는 앞으로도 도시바라는 브랜드명 하에 냉장고와 세탁기, 청소기 등 다른 내수용품을 제조하고 판매하게 된다. 브랜드사용권은 40년간 지속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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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LSC는 도시바 전체 매출의 16%가량을 담당해왔으며 각종 IT첨단 기술을 접목, 소니, 파나소닉과 함께 일본 전자제품의 상징이 돼왔다. 특히 도시바 140년 역사의 주축으로 1890년 미국 에디슨의 직접 가르침 아래 일본에서 백열등 시대를 연데 이어 1930년대 초에는 냉장고, 세탁기, 진공청소기 등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GE와 비견되는 일본 근대화의 상징 기업 중 하나로 ‘일본의 자존심’으로 불리어 왔다. 도시바는 반도체, 컴퓨터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1985년에는 세계 최초의 노트북을 개발하는 등 세계시장에서 기술력을 선도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한국과 중국 기업들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막대한 적자 발생으로  경영악화를 거듭해 왔다.
   중국 가전기업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해외에 진출한 메이디는 전세계에 7개의 생산기지와 3개의 R&D센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체 브랜드 판매비중은 글로벌 매출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메이디는 GE 가전부문 인수에도 참여했었으나 결국은 하이얼에게 기회를 빼앗겼다. 메이디는 이번 인수로 일본과 미국 등에 등록되어 있는 도시바의 5000여개의 지적 재산권도 넘겨받는다. TLSC는 2015년 상반기(4~9월)기간에 1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일본, 중국, 태국 등 9곳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중동과 이집트 등에는 판매망이 잘 갖춰져 있다. 메이디는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에 분포해 있는 이런 도시바의 지적재산권 공장, 판매채널 및 R&D센터를 인수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에어컨과 세탁기에 강한 메이디는 도시바가 견고한 기반을 가진 일본과 동남아 시장에서 백색 가전의 판로를 넓히기 위해 이번 인수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디는 특히 냉장고 분야의 특허가 가장 많아 하이얼의 두 배에 달했다. 메이디가 보유한 에어컨 특허 역시 에어컨 전문기업인 거리를 넘어선다. 메이디는 최근 5년간 30% 이상의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 연구개발 투입을 끊임없이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디는 하이얼과 비교해 브랜드의 글로벌 영향력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자오유 LG 경제연구원은 기술수준에서나 수익성에서나 현금규모에서나, 메이디는 모든 중국의 가전기업 중에서 단연 돋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를 바탕으로 도시바 인수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해외공장 및 해외 판매채널을 손에 넣으면서 글로벌 사업 능력 강화로 이어질 경우 가장 강력한 가전부문의 선도기업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자오유,  ‘글로벌 행보 속도 내는 중국가전기업’ LG ERI 리포트, 2016년 4월5일)


  일본 가전기업들의 몰락과 폭스콘 등 ‘중화 기업’의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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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2015년 8월 또 다른 중국의 가전기업 하이센스는 또 다른 일본의 가전 액정 디스플레이 등 분야의 대표적 기업인 샤프의 가전 브랜드와 멕시코 공장을 인수했다. 하이센스는 이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대대적인 제품 발표회와 광고를 진행하면서, 하이센스와 샤프의 듀얼 브랜드 전략을 펼쳤다. 그 덕택에 구글 검색량에서 하이얼과의 격차를 점차 좁혀나가고 있으며, 한때 하이얼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처럼 경영위기에 직면해 가전부문을 넘겨준 샤프는 마침내 중국에 생산거점을 둔 대만의 거대 IT 기업 폭스콘 (훙하이)에 인수합병되고 말았다. 일본의 대형 전기·전자 업체가 외국 기업에 통째로 인수되는 것은 처음이다. 이는 백색 가전에서 범위를 전자 산업 전반으로 확대하면서 일본 기업들의 몰락과 중국계 기업들의 공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교도통신>과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샤프는 2016년 2월 25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대만의 폭스콘이 제시한 총액 6천600억엔(약 7조2천782억원) 규모의 지원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결정으로 창업 100년이 넘은 액정 디스플레이 등에서 일본의 대표적 전자업체 가운데 하나였던 샤프는 매출액 15조엔(약 165조원)대의 거대 외국기업으로 넘어갔다. 폭스콘은 고용 및 사업의 원칙적 유지를 내걸면서 샤프쪽의 지지를 얻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샤프 인수에서 폭스콘과 경쟁했던 일본 산업혁신기구는 출자 3천억엔, 융자 2천억엔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산업혁신기구는 일본 전자업계를 재편하려는 정부 구상에 따라  샤프를 액정 등 사업 부문별로  해체하는 방식을 제시했으나 거부됐다.
  폭스콘(Foxconn)은 애플, 샤오미, 소니와 같은 기업을 대상으로 중국 선전 인근의 한 공장이 도시를 이룰 정도로 거대한 제조 위탁전문업체(EMS)로 70개 정도의 공장을 운용하면서 컴퓨터, 통신, 가전 3C 분야의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성장해왔다.  따라스 이번 샤프 인수의 성공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에만 의존하던 위탁생산업체 이미지를 벗어나 샤프의 브랜드 가치와 기술을 확보한 것이다. 브랜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셈이다. 이번 샤프 인수전에서 보듯 폭스콘은 현재 LCD패널, TV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치열한 경쟁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궈타이밍 현 회장(66)이 24살 청년 시절인 1974년 10만 대만달러로 10명의 직원과 함께 흑백TV용 플라스틱부품 제조업체인 훙하이를 세운 것이 폭스콘의 시작이었다. 현재 훙하이정밀그룹 산하에 폭스콘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형태다. 1980년대 초 PC조립회사로 영역을 넓힌 훙하이는 1988년 중국에 폭스콘 생산법인을 세운 이후 1997년부터 애플에 컴퓨터 부품을 납품하면서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다. 현재 전세계에 120만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며 애플, 소니, 블랙베리, 휴렛패커드(HP), 델,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세계 굴지의 IT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연 140조원의 매출을 창출하고 있다. 매출액 기준으로 애플, 삼성전자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IT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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궈타이밍 폭스콘 회장 샤프 인수 뒤 기자회견


   그러나 몇 년전부터 폭스콘 중국 공장의 노동착취와 근로자들의 연쇄자살 문제가 불거지는 등 기존 생산방식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애플의 그늘에서 벗어나 샤오미, 화웨이 등 중국 스마트폰용 부품 생산에 이은 이번 샤프의 인수는 이런 한계를 넘어서려는 변화를 반영한다. 궈 회장은 2010년 훙하이 계열사인 치메이가 삼성전자로부터 가격담합 혐의로 고발당해 유럽연합(EU)로부터 3억유로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그 때부터 그는 “경쟁자의 등뒤에 칼을 꽂는 소인배”라고 비난하며 삼성 타도가 자신의 평생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일본 기업과 손잡고 3∼5년 안에 삼성전자를 꺾겠다”면서 반(反) 삼성전자의 뜻을 공공연히 내비쳐왔다.
  이처럼 하이얼 메이디 하이센스 그리고 대만의 폭스콘에 이르기까지 제너럴일렉트릭(GE). 도시바, 샤프 등 미 일의 글로벌 브랜드를 가진 가전사업 인수는 이들 기업이 품질, 가격에 인지도 높은 브랜드까지 갖춰 세계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겠다는 것이다. 가전 한국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 가전 글로벌의 이면-생 과 사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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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중국 가전기업의 글로벌 행보를 ‘수퍼 차이나’의 힘으로만 보는 건 한쪽만을 보는 것이다. 중국 토종 가전기업들은 이제 ‘국내에서는 나누어 먹을 파이가 작아진’ 상황에서 존립이 의심스러울 정도의 구조 조정기의 어려움에 처해있다. 이에 따라 중국 본토 기업들조차도 노동력 부족 및 임금인상 등으로 전략을 바꾸기 시작했다. 광둥성의 많은 기업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다. 메이디(美的) 거리(格力) 거란스(格兰仕) 등 인건비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가전기업들의 베트남 투자 계획은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오유 LG경제연구원 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가전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을 가속시키는 내적 요인은 돈이 많고 힘이 남아 돌아서가 아니라 중국정부의 보조금 지원 중단과 중국내 시장의 포화에 따른 실적 부진이다.( ‘글로벌 행보 속도 내는 중국가전기업’ LG <중국 요망> 차이나 인사이트, 2016년 4월5일) 이런 관점 입각해 중국 가전기업들을 내부적으로 보면 실적부진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할 수도 있다.
  2008년 이래 중국정부는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소비 부양을 위한 대규모의 보조금 정책을 시행했다. 가전기업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은 △에너지 절약 보조금 △이구환신(以旧换新) 보조금 △가전하향(家电下乡=下úÁ) ) 보조금의 3종이었다. 2013년 5월 31일 에너지절약가전 보조금 정책이 만료되면서 모든 가전 부양 정책이 종료돼 중국 가전시장도 침체기에 들어섰다. 2014년 냉장고, 세탁기, 평판TV 3종의 가전제품이 모두 소폭의 역신장을 기록했고, 2015년에도 부진을 이어갔다. 프리미엄 제품은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프리미엄 영역은 모두 외국계 브랜드가 점하고 있다.
  게다가 성장률 하락에 직면한 중국 정부의 경제 부양책 우선 순위에서 가전은 찬밥 신세가 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 가전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위기로부터의 탈출이다. 그는 “중국 가전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이자 중국 언론에서는 ‘중국 가전기업이 세계를 흔들고 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런 평가는 과장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언론들이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은 ‘돈많고 여유있는 자들의 기업 사들이기 쇼핑’은 아니라는 것이다. 
  브랜드 영향력, 기술력, 글로벌 사업 능력 등 중국 가전기업이 3~5년안에 글로벌 가전업계를 이끌 선도자가 되기는 어렵다는 게 그의 견해다. 물론 이중 하이얼과 메이디 등 몇개 기업은 빠르면 몇년 내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다만 그러한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시간과 경험을 들여 한걸음 한걸음씩 쌓아가야 한다. 해외 M&A라는 지름길을 통해 단점을 보완할 수는 있지만, 현재 중국기업의 수익성과 현금흐름이 발목을 잡고 있다. 연속적인 인수합병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첨단기술과 유연한 글로벌 운영능력 등 혁신이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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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LG경제연구원 자오유 연구원


  글로벌 제조업의 혁신과 위기  
 
  신재욱 LG 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2000년대 초반 짐 콜린스가 소위 ‘위대한 기업’으로 분류한 기업들 중 상당수가 이미 몰락했거나, 지금 위기를 겪고 있다”면서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글로벌 제조업 환경의 변화 속에서 전통적 기반에 의존해 제조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 및 대대적 재편에 들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중국대로 선진국들은 선진국 대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기업 재편의 와중에 있으며, 서로 필요에 의한 짝짓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멘스, GE와 같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구 제조 기업들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소프트웨어 서비스 첨단의 기술 집약 분야로 이전하고 있고,  소니, 샤프와 같이 기술력으로 승부하던 일본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은 분야는 과감히 도려내는 대대적인 조직 슬림화를 통해 위기 극복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를 중국 가전기업들이 인수하고 있는 셈이다.  또 PC 시대가 스마트 폰의 모바일 시대로 옮아가면서 IT 분야 양대 산맥이었던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으며 애플, 삼성, 퀄컴 등 스마트폰을 내세운 새로운 신흥강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또한 전자제품의 스마트화(사물인터넷 등)와 글로벌 ‘제조 분업화’도 위기와 혁신을 초래한 요인이다. 과거에 비해 물리적 ‘공장(Factory)’의 중요성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 애플의 스마트폰 조립 생산으로 성장한 폭스콘, 페가트론(Pegatron)과 같은 대만의 전문 제조 기업들의 사업 규모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중국의 산자이(山寨, 짝퉁) 생태계는 30일 만에 모바일 제품 출시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다.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물건을 만들 수 있다. 오히려 거대기업들로서는 아웃소싱이 유리하고, 내재화된 대규모 생산 인프라가 제약 요건이 될 수도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정보통신(ICT) 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제조업은 무한 융합(Convergence)을 경험하고 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같은 OS플랫폼이 디바이스 속성과 밀접히 결합되면서, 이제는 제품의 하드웨어 사양에만 집중해서는 경쟁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다. 스마트TV는 방송, 게임과 같은 콘텐츠 사업자와의 협력이 필수 요소가 되고 있고, 냉장고, 세탁기와 같은 가전 제품 역시 네트워크 사업자나 시큐리티 사업자의 스마트홈 플랫폼과 연동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한 융합 시대에는 혁신적 오픈 이노베이션이 필수 역량으로 요구된다. 많은 부분에서 기존의 체질이 바뀌어야 하는 시점이 도래하는 것이다. 하이얼은 바로 이런 혁신을 구현하려 하고 있다. (신재욱, ‘하이얼, 거대 공장을 벤처 인큐베이터로’ LG Business Insight 2016년 2월 24일)


하이얼과 장루이민(張瑞敏)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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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얼의 GE 인수 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장루이민 회장의 주도 아래 진행된 하이얼의 혁신이다. 미국에 GE의 잭 웰치라는 탁월한 경영자를 모델로 한 경영신화가 있듯이 중국에는 하이얼의 장루이민이 그러하다. 장루이민 회장은 2015년11월 세계 경영학계의의 오스카(Oscar)상으로 불리는 ‘Thinkers 50’에 선정됐다. ‘Thinkers 50’은 2년마다 세계 경영학 구루(Guru) 50인을 선정한다. 그는 2015년 38위에 선정됨과 동시에 Thinker 50의 우수 성과상인 ‘이념 실천상(Ideas into Practice)’도 수상했다. 경영학 이론을 실제 기업 경영에 도입하여 혁신적인 성과를 창출해냈다는 의미다. 실제로 그는 중국의 잭웰치’를 넘어 ‘비즈니스 사상가’로 불린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중국전문가 포럼(CSF)이 중국 언론들에 바탕해 정리한 <하이얼 기업혁신을 이끈 CEO 장루이민(張瑞敏)> (2015년 8월5일) 에 따르면 하이얼과 장루이민의 신화는 이렇다. 하이얼의 전신인 칭다오하이얼 냉장고(靑島 海爾 電冰箱)사의 총 공장장이었던 장루이민은 1985년 품질에 문제가 있는 냉장고를 직접 망치로 부수며 품질 혁명을 일으켰다. 특히 그가 회생 불가능에 빠져있던 기업을 인수해 회생시키는 이른 바 ‘쇼크 상태에 빠진 기업 되살리기(激活休克漁 기절한 물고기 소생시키기 Buying stunned fish)’ 전략은 그를 중국인 경영자 최초로 하버드 MBA강단에 서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는 기업의 설비 등 하드웨어적 부분은 우수하나 기업 관리나 경영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실적이 부진한 기업을 찾아 인수합병하는 전략이다. 한 예로 1995년 하이얼은 당시 2억 5천만 위안의 적자를 내던 훙싱전기(紅星電器) 세탁기 생산공장을 1억 위안에 인수하여, 인사 구조조정이나 설비 교체 없이 인수한지 4개월만에 적자에서 100만 위안 흑자로 전환시켰다.  하이얼의 경영 시스템을 도입해 회사를 정상 상태로 돌려놓은 것이다.
  소형 냉장고로 시작한 하이얼의 성장은 이같은 경영 혁신의 M&A가 바탕이 됐다. 1990년대 들어 주력 사업이던 중국의 냉장고 시장이 포화될 조짐을 보이자, 하이얼은 사업 확장을 위해 홍신전기의 세탁기를 비롯해 1992년부터 1998년까지 20개 이상의 기업을 인수하면서 TV, 오븐, 전자레인지, 컴퓨터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하이얼의 인수 대상은 중국 내수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2005년 메이탁(Maytag) 인수시도, 2011년의 산요 인수에 이어 2012년에는 뉴질랜드 가전 기업 피셔 앤 페이켈(Fisher & Paykel)을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장루이민 회장은 하이얼 경영진이 피인수 기업을 직접 경영하는 것은, 중국 레시피로 서양 요리를 만드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밝혀 왔다. 이런 그의 경영철학은 현대 경영이론과 고대동양철학을 결합했다는 것인데 그래서 중국 내에서는 그를 ‘중국경제의 큰 스승’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경영 철학은  하이얼의 GE 인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하이얼은 GE의 사업 자산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두 회사의 제품/지역 포트폴리오, 유통 결합을 통한 매출 시너지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두 기업의 문화와 철학은 적극 융합하되, 경영진과 인력은 철저히 현지화한다. 산요와 피셔 앤 페이켈(Fisher & Paykel)도 여전히 현지 팀에 의해 독립적으로 경영하도록 했다. 2014년 하이얼의 브랜드 가치는 1,038억 위안에 달해, 13년 연속 브랜드 가치 1위를 지켰다.  글로벌 기업평가기관 브랜드Z(BrandZ)가 발표한 ‘중국 최고 가치 브랜드 Top 100’에서도 가전 부문 1위에 오른 것은 이런 혁신과 경영철학이 있었기 땜문이다.


  플랫폼 형 기업으로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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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의 경영철학이 돋보이는 것은 이런 인수합병 보다도 기업조직의 혁신, 이른바 인터넷 플러스 시대에 그가 내세운 기업전략인 ‘플랫폼 형 기업으로의 전환’에서다. 장루이민은 플랫폼을 빠르게 자원을 배치하는 하나의 생태 시스템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생생하게 살아있는 시스템이다. 그의 꿈은  대형 가전기업인 하이얼을 제품 제조기업에서 창업가의 플랫폼 형 기업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조직구조, 관리체계, 기업문화의 철저한 재창조였다. (웨이자오리(魏昭麗),‘인터넷 플러스 도전보다 기회가 많다’,  <인민화보 중국> 2015년 7월 30일)
  2013년 12월 하이얼은 알리바바(阿里巴巴)와 전략적 협력을 체결했다.  장루이민은 마윈(马云) 알리바바 회장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백년기업은 모두 자살과 타살 속에서 자살을 택했으며, 수차례의 자살 끝에 비로소 백년기업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피살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세상 그 무엇도 소멸되지 않는 것이 없으나, 생존의 지속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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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욱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장루이민이 이런 철학에 따라 하이얼을 벤처 인큐베이터와 같은 조직 시스템, 제조업과 데이터의 결합, 외부 역량의 능숙한 활용 등 어떠한 환경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체질로 바꿨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외부환경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이었다고 지적했다.  장루이민은 1998년 기존의 수직적 부서 체계를 수평적 사슬 형태로 바꿨다. 2002년에는 모든 직원들이 기업가이면서, 회사의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는 ‘Mini Mini Company(MMC)’ 개념을 도입했다. 그리고 2005년 이를 보완하여, ZZJYT 시스템(샤오웨이회사 小微公司)을 도입했다.
 이 하이얼의 샤오이웨이(ZZJYT) 시스템은 언제든 결성, 해산이 자유로운 팀제로, 상품 기획, 기술 개발, 영업 등 다양한 전문성을 지닌 인력들로 구성되고 있다. 이들은 사업 수행에 필요한 모든 권한을 부여 받는 동시에, 사업 성과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급여조차도 사업 성과에 연동된다. 신재욱 책임연구원은 세계 경영학계가 이 혁명적 실험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샤오이웨이 시스템은 무엇보다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통해 직원들의 동기를 최대한 이끌어내고 있다. 누구든지 사업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으면, 경영자에 준하는 역할과 권한을 부여 받고 주도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업이 성공적으로 운영될 경우 별도 회사로 분사(Spin-off)도 가능하다. 분사 이후에는 하이얼과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도록 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빌 피셔 경영혁신학 교수는 인터넷 경영전문 사이트인 <아웃룩(Outlook)>과의 인터뷰에서, 하이얼은 하나의 플랫폼을 형성하여 산하에 다수의 하이얼 브랜드 아래의 소형기업(자주 경영체)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종의 창업투자회사와 같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운영방식은 더욱 간결하고, 더욱 빠르며, 더 큰 혁신이 가능하다. 부단히 새로운 업무를 탐색할 수 있다.
 장루이민은 또한 2013년부터 대대적인 인사조정 계획을 추진해 총 직원 수를 8만 6천명에서 6만명으로 감원하면서 실직한 많은 직원들을 모두 내치지 않고, 대부분 하이얼 산하 샤오웨이회사로 불러들였다. 이른바 샤오웨이 운동이다. 감원도 흔히 보는 해고가 아니다. 내부 조직을 수많은 소규모 단위로 쪼갠 후 그룹에서 분사시키는 형태로 감원을 한 것이다. 2012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샤오웨이 운동으로 내수상품과 판매를 전담하던 하이얼의 자회사들이 협력사로 분리됐고, 독립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샤오웨이’ 운동은 이들을 바탕으로 다수의 샤오웨이 회사를 창업하여 하이얼의 내부 혁신을 촉진하고, 궁극적으로 하이얼 그룹 전체의 구조 전환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이얼을 전통 피라미드형 제조기업에서 다수의 창업자로 구성된 플랫폼 형 수평 구조로 전환하는 것으로, ‘기업의 플랫폼화, 직원의 창업자화, 고객의 개성화’를 실현한다는 목표가 샤오웨이 운동으로 심화된 것이다. 하이얼은 이를 통해 21개의 플랫폼과 183개의 샤오웨이 생태계를 구성하였으며, 그 중 중점 샤오웨이는 3,914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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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하이얼의 스마트윈도 냉장고


  하이얼은 생산 현장도 네트워크를 적극 융합하는 방식으로 변화시켰다.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온수기 등을 생산한 중국 각지 4개의 무인화된 스마트 공장에 이를 도입한 것이다. 인더스트리 4.0을 구현하려는 것이었다. 2011년부터 무인화 기반의 스마트 공장 개념을 도입했다. 그러나 자동화만 추구한 게 아니라, 고객이 직접 생산 프로세스에까지 관여시키는 방식의 쌍방향 네트워크로 결합시킨 것이다. 소비자들은 PC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신이 구매한 제품이 생산되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다. 그리고 직접 생산 과정에도 참여한다. 하이얼의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HOPE(The Haier Open Partnership Ecosystem)이다. 가령 자신이 주문한 냉장고가 하이얼의 스마트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즉석에서 냉장고 문의 색상이나 선반 개수 등을 변경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제품 생산이 완료되면 배송 경로도 직접 결정할 수 있다. 물론 모든 과정은 무인화된 로봇과 프로세스를 통해 진행된다.
  이를 바탕으로 2014년 개발한 제품 가운데 하나가  ‘인간과 센서 상호 작용, 광센서 조절, 주파수 자동 조절’ 등의 획기적인 기술인 ‘스마트 윈도(Smart Window)’를 적용한 스마트 냉장고 였다. 이 냉장고는 세계영향력평가기구(WIO, World Influential Organizations)로부터 ‘전세계 스마트 냉장고 리더 대상’을 수상했다.  스마트 윈도라 하는 센서형 스마트창은  냉장고문 외부 유리에 초정밀 인쇄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이는 표면에 불이 들어온 상태에서는 마치 마술처럼 투명하게 변해 냉장고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며, 불이 꺼지면 냉장고 겉 표면과 혼연일체가 된다. 냉장고 문을 열지 않고서도 안을 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냉장고는 사람과 동물을 식별해 사람이 다가오면 센서가 켜지고 불이 들어오지만 애완동물이 다가오면 실행되지 않는다. 또한  800리터급 냉장고로서는 업계 최고 기준으로 소음을 낮춰 이어폰을  대도 소음이 안 들리는 수준을 실현했다. 
   하이얼 외에도 많은 제조 기업들이 데이터와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말한다. 하지만 이를 자사의 사업에 실제 접목시키는 속도와 수준은 모두 다르다. 고객들이 제품에 대한 불만 사항을 설명하면, 하이얼의 외부 제휴사들이 HOPE를 통해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확인하고, 개선 방안을 하이얼에게 먼저 제안하는 방식이다. 2014년 출시된 스마트 에어 솔루션 Air Cube는 HOPE에 등록된 128개 사내외 전문가 단체가 전세계 980만 명의 소비자와 함께 소통하고, 협업하면서 탄생한 사례다. 2014년 기준 20만 개의 단체, 개인이 HOPE에 등록되어 있으며, 매년 1,200개 수준의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가 HOPE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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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인화와 네트워크화로 인터넷 플러스를 구현한 칭다오의 하이얼 스마트 공장


  장루이민은 만약 기업이 인터넷 시대의 변화와 발전을 따라갈 수만 있다면, 인터넷 시대는 기업에 있어 최고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만약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진다면, 가장 끔찍한 시대가 될 것이다. 그는 이를 ‘물길이 다하는 곳에 다달아, 앉아 구름이 이는 것을 보네(行到水穷处, 坐看云起时)’라는 당대의 유명한 시인 왕유(王维)의 시구로 비유했다. 이는 현재 전통적인 기업과 전통적인 경제는 이미 산길과 물길이 다한 경계에 이르러 ‘물길의 끝’에 도달했지만, 인터넷이라는 ‘구름’이 일어나니 이것이 기회가 되리라는 것이다. 그 구름이 정보기술시대의 원동력이 되는 플랫폼이며, 구름이 되기 위해선 기존 조직과 사업의 범위를 전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전복이 필요하다. 기업 차원에서 기존의 계급적 모델을 전복하여 플랫폼을 형성해야 하고, 또 이익공동체 차원에서 생태계를 형성해야 한다”. (중국 <经济观察报> 2013년 12월 30일 연말특집 ‘四世同堂’의 일부. ‘중국의 기업가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무엇을 꿈꾸고 있나’ LG <瞭望 중국> China Insight 2014년 1월 50호에 번역돼 실림)


 강태호 선임기자 kank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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