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와 러시아의 나진-하산 구하기
2월 25일 전체회의에서 초안 회람을 시작해 3월2일 통과된 안보리 결의 2270호는 그 강도와 범위면에서 역대 최강으로 평가됐다. 북한을 오가는 모든 화물선에 대한 수화물 검색이 의무화되고 북한의 주요 외화 수익원인 철 철광석 석탄 등의 광물자원과 희토류 수출이 처음으로 제한됐다.
사만다 파워 유엔주재 미 대사는 20년 넘게 안보리가 채택해온 대북제재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대북제재의 새 지평을 열었다면서, 이번 대북제재가 북한 정권에 대해 핵개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명하고 단호한 경고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의 모든 수출입 화물 선박에 대한 검색은 대외교역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국이 추진했던, 대북 원유공급 전면 중단과 외화벌이용 해외 노동자 파견 금지 등은 중국 등의 반대로 포함되지 못했다.
비탈리 츄르킨 유엔안보리 러시아 대사
러시아 미러 외무장관간 직접 전화 통화로 결의 수정 관철
무엇보다도 이 안보리 결의 2270호는 러시아의 요구로 최종채택이 하루 연기되는 곡절을 겪었다.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 교섭 최종 국면에서 각국을 흔든 것은 러시아였다.
안보리 제재 결의는 미국과 중국이 주도, 약 1개월 반에 걸쳐 양국이 협의를 계속해 왔다. 왕이 외교부장의 방미를 통해 미-중이 거의 모든 외화 유입 채널을 차단하는 새로운 대북 제제 결의를 채택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러시아는 새 결의안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추가적인 검토 시간을 요청했다. 러시아가 무대 전면에 나선 것은 2월 24일의 미중 합의 뒤다. 러시아의 표토르 일리체프 유엔 차석대사는 2월25일 지금까지 결의안 내용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것에 불쾌감을 비치며 “검토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콘스탄틴 아스모로프 동방연구소 전문가는 러시아 언론에 “미국이 마련한 초안을 보면 이것은 ‘제재’가 아닌 ‘봉쇄’다”라면서 “중국도 여전히 대북 제재로 인해 북한 주민들에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라고 지적했다. 상임이사국으로 거부권을 가진 러시아가 반대하면 채택은 불가능하다, 기권할 경우엔 결의가 성립해도 안보리의 결속은 잃게 된다.
항공유 금수 예외로 평양-블라디보스톡 정기항로 유지
초기의 일본 <NHK>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가 수정을 요구한 것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북한 민항기의 해외 급유 및 연료 판매 허가에 대한 내용이다. 미국쪽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과 러시아의 협의 과정에서 결의안 초안이 약간 수정됐다. 일본 NHK가 입수한 수정안에 따르면 항공유 수출 금지 항목에 민간 항공기의 해외 급유는 허용한다는 예외 규정이 들어갔다. 러시아 언론들에 따르면, 두나라 외무장관이 직접 입장을 조율한 결과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결의 채택을 연기한 채 주말 이틀 연속, 전화로 논의를 거듭했다. 유엔의 외교 소식통들은 “문안 검토에 걸리는 시간치고는 다소 긴 것이 사실”이라며 “러시아의 태도가 지금까지의 대북 결의안 채택 때와는 분명히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애초 중국과 미국이 합의한 초안은 북한에 대한 항공연료 전면 금지였다. 그럴 경우 평양-블라디보스토크 정기노선에도 영향을 끼쳐, 중국 ‘국제항공(에어 차이나)’이 일주일에 2번 운항하는 베이징-평양 노선만이 북한과 외국을 연결하는 유일한 항공로가 됐을 것이다. 러시아로서는 중국과의 항로는 열어놓고 러시아와의 국제항로가 차단되는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결의안 초안에서 북한 로켓 개발 자금 조달책과 단체 목록에서 북한과 러시아 간의 광물 자원 거래를 담당하는 인물의 실명이 제재 대상 목록에 올랐다가 삭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는 조선광업무역개발회사(KOMID) 모스크바 주재 간부를 제재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이로써 북한의 최근 핵미사일 실험에 연루된 것으로 간주된 16명의 관리와 12개 단체가 최종 제재 명단에 올랐다.
그러나 위 두가지 수정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보장받는 내용이었다. 러시아 언론과 정부 모두 이 내용이 관철된 걸 중요하게 다뤘다. 앞서의 수정 내용은 일본 언론 등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전했으나, 나진-하산 사업에 대해서는 비탈리 추르킨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가 직접 나섰다. <타스>통신은 3월2일 추르킨 대사가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에도 러시아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지켜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추르킨 대사는 “러시아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는 전혀 무관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면서, 미국과 추가적인 논의를 진행하여 “이러한 이해관계가 침해받지 않도록” 합의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업에 따른 석탄 공급과 관련해선 안보리 제재위원회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고 통보만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추르킨 대사는 “러시아는 중국 남부 일부 지방과 남한으로 러시아산 석탄을 공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하산과 북한 라진항의 54km구간을 있는 철도 복구 사업은 2008년 10월 러시아철도공사와 북한 철도성 간에 협력협정이 체결되면서 시작됐다.
3월 4일 필리핀 마닐라 북서부 수빅 만에 검문검색을 위해 억류된 북한 선박 진텡호
러시아의 전략적 판단과 북핵 문제의 향방
지금까지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에 관한 한 미·중이 합의하면 러시아가 별다른 이의 없이 동의해줬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문제제기는 이례적인 것이었다. 러시아를 배제하고 미·중이 한반도 문제를 좌우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낸 것이라는 평가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월18일 또한 한미일 등이 밝힌 양자 제재는 불법적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어떤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방적 제재 형태로 취해지는 특정 국가에 대한 모든 압력은 불법적”이라면서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취하는 제재만을 인정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중국이 2월7일 박근혜 대통령이 사드배치 공식화를 밝힌지 1시간 만에 김장수 주중대사를 불러들여 항의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차관이 2월12일 박노벽 주러 대사를 외무부로 불러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러시아의 입장은 북러 관계와 앞으로 전개될 북핵 문제 향방이라는 두가지 관점에서 중요하다. 우선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이래 북중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북러관계가 그 빈공간을 채워왔다. 북중관계의 악화라는 상황에서 북한은 그만큼 러시아에 의존해 온 셈인데 러시아의 이런 입장은 북한의 핵실험에도 북러관계가 오히려 더 강화될 여지를 주고 있는 셈이다. 북한에게 러시아라는 후원자가 있는 한 러시아를 배제하고서 한미가 중국만을 설득하거나 압박해서 북한을 고립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또한 3차 핵실험과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악화돼 왔다는 점에서 중국이 취할 수 있는 북한에 대한 제재의 강도나 효과는 오히려 한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예컨대 금융 제재는 중국이 아니라 러시아가 열쇠를 쥐고 있다. 이미 2013년 5월 3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로 중국은행은 북한의 대외 금융사업을 총괄하고 외국환을 결제하는 조선무역은행과 거래를 중단했다. 그러나 2014년 6월4일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 북러간 무역경제, 과학기술협력 정부간 회의에서 러시아는 러시아 은행에 북한이 계좌를 개설하고 두나라간 무역결제를 루블화로 하는데 합의해줌으로써 숨통을 열어줬다. 당시 북한의 대외무역은행과 고려개발은행은 러시아 '지역개발은행'에 루블 대리계좌를 개설했다.
알렉세이 마슬로프 고등경제대학 동양학과 학과장은 "루블화 결제 전환이 무엇보다도 북한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루블화는 러시아의 국부에 의해 가치를 보장받지만 북한의 원화는 그렇지 않고 국부와도 관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타마라 카시야노바 '러시아금융감독클럽' 수석 부회장도 “러시아는 국가 결제시스템을 개발하고 있고, 다른 국가들과도 루블화 결제로 점차 전환하려 한다. 모든 국가가 이를 따르지는 않겠지만 이런 행보는 세계 경제에 미치는 미국 달러화의 영향력을 줄이고 다른 거대 행위 주체들이 통화시장에 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거대 게임의 서막일 뿐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루블 유가가 달러 유가보다 몇 % 낮은 점들을 고려해 몇몇 국가는 이런 행보를 따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제재결의의 한계 보여주는 항공유 공급 중단
이번 제재의 한계는 또 다른 핵심조항인 항공유 공급중단에도 해당된다. 양문수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중국이 2013년 3차 핵실험 이후부터 항공유 공급을 연간 4만t에서 대폭 줄였기 때문에 이번 조처의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2015년 1월 31일 중국 해관총서가 공개한 2014년 북중무역 통계자료(1∼12월)에 따르면, 중국은 북한에 항공등유(분류코드 HS 27101911) 1만 3천630여t(1천402만 달러)을 수출했다. 이는 2013년 항공등유 600t(66만 달러)에 비하면 확연히 증가한 것이다. 2013년 3차 핵실험으로 중국은 항공유 공급을 사실상 중단한 셈이다. 2014년의 항공유 공급도 2011∼2012년에 비해서는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2011년 중국은 북한에 항공등유 4만 611t(4천686만 달러), 차량용 휘발유·항공휘발유 5만 8천182t(5천831만 달러)를 공급했고, 2012년에도 항공등유 4만 2천251t(4천957만 달러)를 수출한 바 있다.
게다가 항공유의 특성을 보면 그 중단 효과에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항공유는 휘발유와 등유와 같은 유분 즉, 거의 같은 비등점 범위(50~300℃)에 들어가는 석유 유분이고 전문가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류제품으로부터 만들어지므로 성분적으로는 그렇게 복잡한 제품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항공연료(Aviation Fuel)는 항공 가솔린(휘발유)과 항공 등유(제트연료)로 구분된다. 항공 가솔린은 프로펠러 비행기나 헬리콥터 등 내연기관을 돌릴 때 쓰이고, 항공 등유는 제트엔진을 돌릴 때 쓰인다. 그런데 제트엔진에 쓰는 항공 등유는 항공 가솔린보다 더 제조하기가 쉽다. 따라서 안보리결의 2270호로 항공연료를 중단했다고 해도 전투기에 쓰는 항공등유는 사실 통제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항공연료 중단은 군사무기로의 전용을 막겠다는 것이지만 북한이 항공등유를 확보하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있는 셈이다.
나진-하산 철도구간 공사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전략적 의미와 중국 참여 확대
2016년 2월 18일 <리아 노보스티>에 따르면 안드레이 쿨리크 러시아 외무부 제1국장은 박근혜 정부가 러시아와 남북한이 함께 추진해온 3국간 하산-라진 물류 프로젝트 참가하는 것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확인했다. 쿨리크 제1국장은 2월 17일 한국정부가 이런 입장을 통보한 것으로 전했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산하 극동연구소의 한반도 전문가인 류드밀라 자하로바 박사는 남한이 2018년 전에, 즉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에는 이 프로젝트로 복귀할 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반도 전문가인 게오르기 톨로라야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경제학연구소 아시아 전략 센터장은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면, 다른 누구보다 남한에 경제적 이득이고 거기에 더해 한반도의 정세 안정에 기여함으로써 ‘북한 경제의 개방과 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에 있어 이 프로젝트는 남북한과 함께 철도(하산-라진 철도가 그 일부), 가스 및 전력연계망 사업 등 다양한 합작 프로젝트를 추진하고자 하는 러시아의 국가 전략적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남북러 3국은 이 철도를 통해 연 5백만t의 석탄을 남한으로 운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남한의 참여 중단에도 자하로바 박사는 이 프로젝트가 중단되지 않고 러시아-나진-중국 간 삼각 화물운송은 계속 이뤄질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2월 26일 러시아 관영 <스푸트니크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 철도를 이용해 시베리아산 석탄을 중국을 비롯해 아태지역 국가들에 계속 공급할 것이며 현재 나진항 물동량의 약 75%가 중국으로 가고 있으며 2015년 한 해 이를 통해 중국으로 공급된 석탄은 120만여 t에 달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철도공사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사업이 계속 추진될 경우 “한국이 프로젝트에서 빠지면 다른 잠재적 파트너들과 협력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북 철도 현대화 등 남·북·러 3자 관계 틀 뛰어 넘는 거대 프로젝트
자하로바 박사도 이 프로젝트의 전략적 의미를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북러가 함께 추진한 ‘상업적’ 프로젝트 중 최대 규모일뿐 아니라 상당 부분 북러 두 정상간의 합의라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0년 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과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통해 한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한반도종단철도(TKR) 사업의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하산-나진 철도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하산-나진 간 철로 연결 합의가 이뤄진 건 한참이 지난 2008년이었고 그로부터 5년이 더 지난 2013년 9월22일에서야 철도 개통기념식이 열리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당시 북한은 이를 ‘조러관계 발전과 공동번영의 이정표’로 평가하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다시 1년 조금 못된 2014년 7월 러시아는 나진항 3호 부두 터미널 현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로부터 2014년 11월 드디어 처음으로 러시아산 유연탄 4만5천t이 나진항을 통해 포항으로 시범운송됐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당시 이 첫 석탄 시범운송과 관련해 “석탄 공급 시범사업 결과 우리는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연결하는 구체적인 작업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북-러 양자 및 남-북-러 삼자 관계의 틀을 뛰어넘는 중요한 인프라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한러는 2015년 4월 5월에 14만t을 2번째 시범 운송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015년 7월25일 러시아 극동지역 최대 신문인 <졸라토이 로그>의 보도를 빌려 2015년 들어 나진항으로 운송된 러시아산 석탄량이 급증했다며 2015년 상반기에만 73만4800톤의 러시아산 석탄이 북러간 국경철도를 통해 북한 나진항으로 반출됐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러시아 극동철도를 인용해 이같은 석탄 운송량은 2014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53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라고 덧붙였다. 2015년 7월 블라디미르 야쿠닌 당시 러시아철도공사 사장은 “오랜 불확실성의 시기를 지나 나진-하산 철도가 정상 운행을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북한과 러시아는 러시아산 석탄 운송량을 연 150만t으로 잠정 합의한 바 있다. 이 신문은 또한 2015년 상반기 하산-나진 국경철도를 통해 운송된 국제화물 운송량이 78만7500톤이라고 밝혀, 5만2700t 정도의 석탄 외 화물이 철도를 이용해 북한과 러시아 사이를 오갔다고 덧붙였다.
또 2015년 12월 8일 러시아의 나진항 3차 시범운송에는 석탄 이외에 처음으로 백두산 생수를 컨테이너로 싣고와 부산에 내렸다. 농심의 백두산 얼다오바이허(이도백하) 백산수 생수공장에서 훈춘(琿春)의 포스코현대 물류단지-북-중 국경지역인 두만강 하구의 취안허(圈河) 통상구-나진항을 거쳐 온 것으로, 나진항 운송이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석탄 외에 나진항에서 컨테이너를 통한 수출입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농심쪽은 “운송거리가 차량 250km, 선박 950km로 기존의 얼다오바이허-다롄 항을 통한 평택항 및 부산항 운송보다 약 800km나 단축됐다”며 “이 노선을 정기화하면 물류비를 낮추고 백산수의 해외 수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015년 12월 포스코, 현대상선, 한국철도공사 3사로 구성된 콘소시엄은 정부로부터 1천억 규모의 자금지원을 받기로 한 상태였다. 이 자금은 러·북 합작법인 ‘라손 콘트랜스(Rason ConTrans)’의 러시아 지분 70% 중 49%를 매입하기 위한 것이었다(북한 지분은 30%). 하산-나진 철도 및 라진항 하역터미널은 ‘라손 콘트랜스’가 소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르면 2016년 상반기에 러시아 철도공사와 한국 컨소시엄 간에 지분 매입 계약이 체결될 전망이었다.
나진항은 러시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동해로의 출구 무역항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015년 7월1일 훈춘시 정부를 인용해 중국이 북한 나진항을 기존 석탄 수송에서 컨테이너 화물까지 확대해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훈춘시 정부에 따르면 중국 화물선은 6월24일 훈춘에서 컨테이너 38개를 싣고 북한 나진항을 거쳐 3일 뒤인 6월 27일 상하이 닝보항에 도착했다. 앞서 6월 11일에도 중국의 첫 화물선이 같은 경로를 통해 42개의 컨테이너를 상하이로 옮겼다
톨로라야 아시아 센터장이 지적했듯이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또한 북러간 협력의 첫결실이자 철도망 현대화 전력 가스 등 거대 프로젝트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었다. 이는 2014년 5월 옛소련시절부터 쌓여온 북한의 대러 채무 109.6억 달러 중 90%인 90.8억 달러를 러시아가 탕감해 줌과 동시에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완공돼 구체적인 결실을 보이면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북러는 나진-하산철도 연결 및 나진항 3호부두 현대화에 그치지 않고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포베다, 승리라는 뜻)에 들어갔다. 러시아 건설업체인 '모스토비크'의 올레크 시쇼프 사장은 2014년 말 러시아 경제 주간지 <엑스페르트 온라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정부와 함께 철도 재건 계획을 이미 수립해 놓았다"며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현대적인 철도를 건설할 계획이다. 기존 철도망을 재건할 뿐만 아니라 남북 양쪽에서 평양 주변을 통과하는 화물 수송용 구간도 새로 건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로젝트 실행을 위해 북한의 철도망을 10개 구간으로 구분했고, 필요한 자료 수집과 함께 첫 구간인 동평양 분기역 설계에도 이미 착수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한 투자 자금을 북한의 자원 개발을 통해 조달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알렉산드르 갈루시카 극동개발부 장관은 “북한 천연자원의 특별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고 당시 밝혔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2014년 6월 두나라는 양국 간 루블화 결제를 도입됐다. 그러자 북한은 러시아 투자자들과 북한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회사 직원들에 대한 비자조건을 완화해 주는 것으로 화답하는 방식으로 신뢰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갈루시카 장관은 “이런 결정들은 러시아 투자자들에게만 적용되고 있다. 중국 등 다른 국가 투자자들은 러시아측이 받는 특별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이를 바탕으로 가스·전력을 북한을 경유해 남한에 공급하는 방안, 러시아 투자자들이 개성공단에 진출하는 방안 등 다양한 남북러 3각 협력사업에 대한 기대를 보였었다. 2014년 10월 북러 정부 간 협력위원회에서는 러시아-북한-한국을 잇는 송전탑을 건설한다는 중요한 전략적 결정도 채택했다. 그만큼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대변하는 사업이었다면, 러시아에게는 한반도를 교두보로 하는 신동방정책의 핵심적인 프로젝트였다.
그런 점에서 나진-하산 프로젝트 중단 결정은 개성공단 중단 및 철수가 남북관계를 단절시킨 것 이상으로 남북러 협력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은 셈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전략적인 의미와 함께 중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내다본 러시아가 나진-하산 구하기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3월6일 <스푸트니크 통신>에 이번 안보리결의 2270호를 이렇게 평가했다.
“제재가 그렇게 강력하게 이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북한의 경제 상황을 악화시킬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서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 질 것이며, 더욱 나쁜 것은 (김정은 지도부가 추진해 왔던 경제) 개혁이 아마도 중단되리라는 것이다.”
강태호 선임기자 kank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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