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전문웹진 <디펜스21> 병영24시 게시판은 한겨레 회원이라면 누구든지 병영에 관한 정보와 의견을 올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신병훈련, 내무반, 병영일기 등 군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식사 중 식판 엎어버리고 후임들마저 이름 불러
 부대 옮겨도 블랙리스트 꼬리 ‘군생활 사형선고’

 

해병 2사단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김모 상병(19)이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5일 사고조사단과의 필담에서 “더 이상 구타, 왕따, 기수열외는 없어져야 한다”며 이번 사건을 일으킨 이유로 기수열외를 들었습니다. 언론 보도가 나간 후 기수열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악질적인 기수열외의 실상이 각종 인터넷 게시판을 달구고 있습니다. 도대체 기수열외가 무엇이기에 김 상병은 전우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을까요? 실제 해병대에 근무해 본 경험을 토대로 글을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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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천초목도 벌벌 떤다는 해병대 순검. 훈련단 시절 "눈도 감지 마라!"고 호통치는 DI(훈련교관) 탓에
많은 해병들이 눈물을 줄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눈 떠서 잘 때까지 괴롭히고 괴롭히고 또 괴롭히고

기수열외란 기수로 유지되는 해병대 조직문화 안에서 특정 해병의 기수를 박탈하는 악습입니다. ‘미제 철조망은 녹슬어도 해병대 기수빨은 녹슬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 해병대에서 기수를 박탈당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구타나 괴롭힘보다 강한 제재입니다. 당사자에게는 정상적인 군 생활에 사형선고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형벌이겠죠.

기수열외를 당한 해병은 인간 이하 취급을 받게 됩니다. 선후임을 가리지 않고 기수열외를 당한 해병을 괴롭힙니다. 체스터(관물함)를 하루에도 몇 번씩 뒤엎어 놓고, 식사 중인 식판을 엎어버리기도 합니다. 기수가 한참 낮은 후임들마저 이름을 부르면서 아랫사람 취급하고 선임들은 이를 방관합니다. 선임들은 부대원들에게 기수열외에 동참하기를 강요하고 이에 불응하면 함께 기수열외 시켜버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해병에게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동기들마저 억지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수열외를 당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구타를 당한 후 이를 상관에게 보고했다가 선임들의 미움을 사는 해병, 내무 생활을 잘 못 하는 해병, 훈련에서 자주 낙오하는 해병, 하극상을 일으키는 해병 등 주로 군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 하는 해병들이 기수열외를 당합니다.


무서운 점은 기수열외가 발각돼 해당 해병을 기존 부대원들과 분리해 다른 부대로 전출 보내는 배려를 하더라도 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출오기 전 근무했던 부대에 전화 한 통만 걸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기수열외 꼬리표는 군 생활 내내 그를 따라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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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임들을 기합주고 있는 해병. 사실 이런 사진은 설정샷인 경우가 많습니다.    

 

 

암암리에 행해지는 악습…일부선 “2007년께부터 슬슬 유입” 증언도


기수열외가 해병대 규정에 있는 공식적인 징계는 아닙니다. 단지 병사들 사이에서만 암암리에 전해지는 악습일 뿐입니다. 또한 모든 해병대에 만연한 악습도 아닙니다. 제가 근무했던 중대에서는 아무리 군 생활에 적응 못 하는 해병이 있어도 기수열외를 당하는 해병은 없었습니다. 주변의 해병 선배들에게 기수열외에 대해 질문해본 결과 90년대에 해병대에서 복무한 선배들은 기수열외란 단어 자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후임이 선임을 괴롭히는 상황도 상상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995년에서 1997년까지 해병 2사단에서 근무했던 해병 759기 이모 씨에 따르면 자신이 복무할 당시에는 기수열외란 말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모 씨와의 통화 내용입니다.

“그런 말이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물론 군 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선임을 제대로 대우 안 해주는 경우는 있었지만 왕따를 시키거나 후임이 선임을 괴롭히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기수로 유지되는 해병대에서 후임이 선임을 때리고 반말을 하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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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에서 작전 중인 대한민국 해병대의 모습.

 


2005년에서 2007년까지 해병 1사단에서 근무했던 해병 995기 서모 씨는 기수열외가 병장이 됐을 때쯤 중대로 슬슬 유입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서모 씨의 증언입니다.


“본부중대에는 있다고 들었는데 보병중대에는 그런 악습이 없었다. 내가 병장쯤 됐을 때 우리 중대에서도 그 단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밑의 후임들을 집합시켜서 진상을 파악해 봤다. 그리고 기수열외를 지시한 해병, 당사자에게 하극상을 일으킨 해병들을 크게 꾸짖었다. 왕따라는 문화가 해병대로 이상하게 젖어든 것 같다.”


서 씨는 대화를 하는 내내 분을 삭이지 못하고 해병답지 않은 문화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이들 외에도 구타에는 관대한 예비역들도 현재의 기수열외 문화에 대해선 강한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기수열외는 기수로 유지되는 해병대 조직의 근간을 뒤흔드는 조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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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에서 훈련 중인 훈련병들.  ⓒ 날아라 마린보이

 

 

병사들은 구타 전통 유지하려하고 간부들은 잡아내려 하고    

 

일부 언론매체에서는 간부들이 이러한 병사들 간의 문화를 알면서도 묵인했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해병대 생활을 해 본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힘든 지적입니다. 예전부터 해병대는 구타와 갖은 악습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구타는 병사들 사이에서 오래된 전통이자 효율적인 병력관리의 기본이었습니다. 하지만 간부들의 입장은 다릅니다. 병사들과 달리 군 생활이 직업이고 장기복무, 진급 등이 걸려있기 때문에 구타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구타를 인지하고도 모른척했다가 나중에 상부에 발각되면 진급과 장기지원에 치명적인 영향을 줍니다.

병사들은 구타를 전통으로 유지하려 하고, 간부들은 이를 어떻게든 막고 잡아내려 하기 때문에 해병대 병사와 간부들은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닙니다. 구타의 작은 징후만 보여도 중대를 뒤집어버리는 간부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동안 해병대가 구타사고로 악명이 높았고 군 이미지 개선을 위해 사령관 예하 부대 간부들이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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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탤런트 현빈의 입대로 해병대의 이미지가 한층 좋아졌지만 

이번 사고로 인해 해병대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 날아라 마린보이


실제로 제가 근무했을 당시(2006년~2008년) 구타사고가 발생하면 가해자들은 모두 영창행 아니면 구속이었습니다. 단 한 사람도 봐주는 일이 없었습니다. 후임에게 욕설 한 마디를 했다는 이유로 일주일 내내 간부들의 집중감시를 받았던 해병도 있습니다. 구타를 통해 기수 질서를 유지하고 전통을 유지하려는 병사들의 입장에서 간부들은 적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대대의 0중대는 한동안 중대원들이 전투복 상의에 검은 배지를 달고 다녔는데, 배지에는 전군에서 구타발생률이 가장 높은 중대임을 나타내는 문구가 찍혀 있었습니다. 이런 중대의 간부들이 상부로부터 받는 압박은 어느 정도일까요? 해병대는 좁습니다. 어떤 부대에 어떤 사고가 났는지, 어떤 간부가 부대관리를 어떻게 했는지는 순식간에 퍼집니다.


해병대의 실태가 이러한데 일개 소초장이 부대관리를 위해 기수열외를 묵인했다고 하는 건 솔직히 믿기 힘듭니다. 물론 사건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저의 좁은 경험만을 가지고 속단하면 안 되겠죠. 만약 소초장이 김 상병이 기수열외를 당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묵인했다면 가장 먼저 처벌받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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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해병대 내에서 일어난 구타사고 '코드 레드'를 다룬 영화 <어 퓨 굿맨>.

 


정신병 앓다가 교관 죽이고 자살하는 영화처럼

해병 예비역들 사이에도 기수열외에 대한 논란이 분분합니다. “기수열외라는 게 쉽게 하는 것도 아닌데 얼마나 찐빠(실수)를 냈으면 그걸 당하냐?”, “해병대 기수 문화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선임에게 대드는 놈을 기수열외 하는 건 당연하다”. 이렇게 기수열외를 옹호하는 예비역들이 있는 반면 “아무리 부적응자라도 함께 끌고 가는 게 해병이다”, “군 생활을 잘 못해도 선임은 선임이다”며 기수열외를 부정적으로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수열외는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아무리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군 생활 내내 인간 이하 취급을 받으며 왕따를 당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어떻게 성인이 된 군인들이 차라리 투명인간 취급 받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사람을 괴롭힙니까? 적에게는 악마가 되고 국민에게는 순한 양이 돼야 하는 해병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악습임이 분명합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이 생각났습니다. 이 영화에는 훈련소에서 잦은 실수를 하는 바람에 동기들을 힘들게 만드는 ‘로렌스’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거듭된 실수에 따른 단체기합으로 분노한 동기들은 야음을 틈타 잠을 자던 로렌스에게 집단구타를 가합니다. 그날 이후 로렌스는 훈련도 잘 받고 실수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로렌스는 훈련소 수료를 앞둔 밤, 실탄을 장전한 소총으로 훈련교관을 죽이고 자살을 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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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구타로 인해 정신 이상이 돼 버린 로렌스. <풀 메탈 자켓>은 영화 초반부에서 획일적인 군대문화가
한 사람을 붕괴시키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로렌스가 당했던 집단구타는 전형적인 기수열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24시간 내내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군대에서 1분 1초도 벗어날 수 없는 기수열외의 늪은 피해자를 정신 이상으로 몰아넣을 여지가 충분합니다. 심지어 자는 시간에도 괴롭힘을 당하는데 버텨낼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장담컨대, 이런 식의 기수열외 악습이 사라지지 않으면 분명 이런 사건은 또 일어날 것입니다. 2만 7천명의 해병이 있으면 2만 7천개의 자아가 있고, 2만 7천개의 자아가 해병대라는 이름하에 하나로 통합되기란 불가능합니다. 분명 김 상병 같은 해병은 수없이 생겨날 것이고 크든 작든 사고는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왜 애초에 적응도 못 할 놈이 해병대에 지원했냐"고 되묻는 예비역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묻습니다. 바깥에서 보던 해병대와 직접 겪어본 해병대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까? 생각했던 것과 다른 모습에도 불구하고 적응을 하는 해병이 있는 반면 적응하지 못하는 해병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해병대의 이미지는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작지만 강한 군대, 국가전략기동부대의 이름에 걸맞은 쇄신이 필요합니다. 현역 해병들의 결단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예비역 해병들의 힘도 필요합니다. 모쪼록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해병대를 바꿔나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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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병대 훈련단의 꽃인 목봉 훈련. 한 사람이라도 손을 놓으면 모두가 힘들어지는 훈련입니다. 
전우애로 똘똘 뭉쳤던 이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이 순간을 기억하며 현역 해병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길 기원합니다. 

 

  


 

김동규 <D&D 포커스> 기자 ppankk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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