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보부도 북파공작원 운영했다

2011. 0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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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준 HID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ㆍ유족동지회 회장 인터뷰


HID. 흔히 북파공작원을 말한다. 정부는 수십 년 동안 이들의 존재를 감추는 데에만 급급했다. 가족에게조차도 이들의 존재감은 없었다. 목숨을 내놓았지만 밝히지 못하는 ‘존재’이자 ‘어둠의 자식’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홍길동이 호형호제(呼兄呼弟)를 하지 못했던 것과 유사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었다면 뼈 조각 하나라도 가져오기 위해 노력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의 전향적 결단’이다. 디앤디포커스는 하태준 HID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ㆍ유족동지회 회장을 만나 HID의 목소리를 들었다. 편집자



1967년 가을, 방첩대 ‘609 특공대’의 대북 응징보복 작전 

이진삼 자유선진당 의원이 방첩부대(현 기무사령부의 전신) 대위로 근무하던 1967년 가을, 세 차례 군사분계선을 넘어가 북한군 33명(이 의원은 2월 8일 대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35명이라고 정정했다)을 사살한 사실이 최근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간담회에서 이 의원과 김관진 국방장관 사이에 오간 대화에 언급된 대북 보복작전의 실체는 2월 6일 <MBC>가 군 자료를 입수해 보도하면서 세간에 화제를 모았다. 이 의원의 대북 응징보복 작전이 기록된 자료는 몇 년 전 기밀문서 보존 연한이 지나면서 일부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제공됐다.

당시 작전의 배경은 이렇다. 1967년 5월 열린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 주석은 모든 역량을 집중해서 남한 사회를 교란시킴으로써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김 주석의 지령에 따라 그해 북한의 무장공작원에 의한 도발행위는 모두 118회에 달했다. 국군과 주한미군의 GP가 수시로 습격당하는가 하면 강원도 양구에서는 북한 무장공작원이 육군 21사단 부연대장 홍두표 중령을 살해하고 목을 베어가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군의 응징보복 작전은 방첩대 산하 ‘609 특공대’ 이진삼 대위에게 맡겨졌다. 609 특공대는 윤필용 방첩부대장의 직할부대로서 ‘방첩대의 방첩대’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이 대위는 작전에 투입할 대원으로 북한 지리와 말에 익숙한 전향 무장 공작원을 활용하기로 하고 6명을 추려냈다.

이들은 그해 생포되어 전향 의사를 밝힌 사람들이었다. 이 대위가 주도한 보복작전은 ‘필승공작’으로 명명되어 그해 9월27일 일몰 직후 시작됐다. 북한군 복장을 하고 황해도 개풍군 금성천 계곡을 따라 북한 지역으로 4km 올라간 이 대위 일행은 다음날 오후 4시경 정찰 도중 지뢰 매설 작업을 나온 북한군과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이 첫 교전에서만 북한군 13명을 사살했다. 이후 10월19일까지 두 차례 더 진행된 작전에서 이 대위는 북한군 20명을 추가로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북한군 GP를 공격한 마지막 작전에서는 우리 측 요원 1명도 전사했다.

뒤늦게 이런 작전내용을 공개한 것은 우리 군의 기강이 해이해진 것을 질타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 이 의원 측의 해명이다. 지난 해 연이어 발생한 북한의 도발과 관련, 우리 군의 기강이 무너진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사실을 밝히게 됐다는 것이다. 이 의원 측은 공개적으로 북파작전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지난 2009년 국정감사 때 북한과 관련한 비밀문서가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공개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우리군과 직접 관련된 북파작전의 내용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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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수임무수행자ㆍ유족동지회에 마련된 HID희생자 추모실 모습. 디앤디포커스 제공


그런데 이 의원이 밝힌 군의 대북 응징작전에는 이밖에도 새롭게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바로 방첩대가 운영한 북파공작원의 존재다. 1948년 11월 육군본부 정보국 첩보과로 창설되어 육군 첩보부대(HID)→정보사령부(AIC)→현재의 국군정보사령부(DIC)로 이어지는 변천과정속에서 이들 부대 소속으로 북파공작을수행했던 민간인 또는 현역 신분의 공작원들과는 전혀 별개의 존재가 있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방첩대ㆍ중앙정보부 소속 북파공작원의 실체

남북 대치 상황 속에서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 되었던 북파공작원의 존재는 지난 2000년 10월, 16대 국회에서 민주당 김성호 의원이 HID 소속 북파공작원 가운데 53∼56년까지 활동했던 HID 1기∼3기 366명의 명단을 입수해 공개함으로써, 그 실체가 처음 공개되었다. 이후 2003년 9월 21일 국군정보사령부가 국회 국방위 소속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는 지난 1951년 육군첩보부대(HID)를 창설한 뒤 94년까지 양성된 북파 공작원은 수는 모두 1만3000여명으로 이 기간 중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공작원은 7,800여 명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 숫자는 정보사에서 양성된 북파공작원만 헤아린 것으로 국군기무사령부와 중앙정보부에서 별도로 운영했던 북파공작원들은 제외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바로 ‘HID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ㆍ유족동지회’ 하태준 회장의 주장이다. 하 회장은 지난 2006년 3월 북파 임무 수행 중 북측 지역에서 체포된 것으로 추정되는 ‘북파공작원’ 41명의 명단을 최초로 공개하고 이들에 대한 생사 확인 및 송환을 촉구하기도 했다.

<디앤디포커스>는 2월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HID 대한민국 특수임무 수행자ㆍ유족동지회’ 사무실에서 하태준 회장을 만났다. 

- 이진삼 의원의 발언으로 60년대 대북 응징보복 작전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북파공작원의 실체에 대해 다시 한 번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방첩부대가 북파 공작을 수행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 2004년 1월 8일 국회를 통과한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안’은 특수임무수행자를 ‘1948년 8월 15일부터 1994년 12월 31일 사이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간 중 군 첩보부대에 소속되어 특수임무를 하였거나 이와 관련한 교육훈련을 받은 자’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한 ‘군 첩보부대’에는 방첩대나 중앙정보부 소속은 포함돼 있지 않다. 특히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는 아무리 군 첩보부대의 범위를 확대해서 해석한다 해도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보상법이 통과된 후 과거 중앙정보부 소속으로 일한 공작원들도 국정원에 보상을 요구하는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서 그들 중 일부에게 보상금을 지급됐다. 국무총리실 산하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심의위원회를 통해서 보상금을 산정하고 지급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국방부 예산으로 지급했다. 우리 회원 중의 한 사람도 형님이 북파공작원으로 일하다 실종됐는데, 아무리 얘기를 들어봐도 북파공작원은 틀림없는데 정보사소속은 아니었다. 정보사에서 그 한명을감춰야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기무사에 지속적으로 근무확인을 해 줄 것을 요구했고 이 사람의 존재는 확인할 수 있었지만, 보상심의위에서 법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서 소송까지 갔다. 결국 유족이 승소해서 보상을 받았지만….

그러면 기무사에서는 과거에 북파 공작원을 딱 한 명 운영했는데, 그 한 명이 보상 받았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앞으로도 이런 사례는 줄줄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기무사가 북파공작을 한 사실을 감추려고만 할 것이 아니고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희생된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유족들에게는 전사 확인과 보상 등 후속조치를 해줘야 옳은 일일 것이다. 시급한 것은 보상 대상자들이 대부분 고령이어서 이 분들이 다 돌아가시고 나면 기무사 소속 북파 공작원들의 실체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민원 대상자가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 분들이 법률 테두리 밖에 있다고 한다면 기무사에서 법률을 개정해서라도 진상을 밝히고 명예회복, 보상 등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

- 하 회장 말씀은 우리 정부가 보다 전향적으로 북파공작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 들린다.

= 북파공작원 문제는 이제 보상 문제, (북한 당국에 체포된) 피포자 문제, 유골송환하는 문제 등 이렇게 파트별로 묶어서 해결하고 수습하는 쪽으로 가야지. 내가 봤을 때는 청와대에서도 이 문제는 정책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해당기관에서는 정책 입안자들이 정책 결정자들이 결정할 수 있는 백데이터를 있는 그대로 브리핑해줄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미국이 좋은 선례를 보여주고 있지 않나. 미군 병사 유골을 찾아주는 대가로 북측에 금전적 보상을 하고 있는데, 내 나라에 충성하다 죽은 국민의 뼈 조각 하나라도 가져오는 게 중요한 것이라는 거 아닌가. 이게 국가가 국민을 위해서 보여주는 성의다.


김도균 오마이뉴스 기자 capa195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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